일상

relax! relax!

달빛사랑 2017. 4. 23. 12:13

그런 거 있잖아요. 뭐랄까, 먼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바보같이, 그것도 술에 취해 속내를 덜컥 드러내버리고는 나중에 술 깨고 나서 후회하게 되는 일 같은 경우 말이에요. 어제 신현수 선배 장남 결혼식을 마치고 지인들끼리 뒤풀이 하는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였어요. 내가 보고 싶었던 후배가 그 자리에 참석했기 때문에 반가운 나머지 그랬겠지만 나는 다소 오버를 했던 것 같습니다. 딱히 실수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밀고 당기는 관계설정이 필요한 경우인데 내 쪽에서 자발적으로 투항해버린 경우라고나 할까. 애초에 LH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시작된 술자리였는데, 갑자기 판이 커져버리면서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맘에 두고 있는 사람에게 속마음을 들키게 되면 머릿속이 하얘지잖아요. 물론 그것이 간혹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이런 식의 고백 아닌 고백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기가 참 애매하네요. 자존심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혹시 내가 너무 서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며 그 사람이 나로부터 한 걸음 뒤로 물러나지 않을까 하는, 바로 그것이 걱정인 거지요. 아무튼 어제 표면적으로는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술자리였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소설가 L은 여전히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건강이 좋지 않던 K 시인도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 연극연출가 BK 녀석이 나타나서 분위기를 흐려놓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어쨌든 어색해진 분위기를 갈무리하기 위해 1차 술자리를 정리하고 몇몇은 먼저 귀가했는데, 문제는 자리를 옮겨서 시작된 두 번째 술자리에서도 그의 주사는 계속되었습니다. BK는 가수 O에게 육두문자까지 써가면서 역정을 냈는데,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가수 O는 무척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욕을 하는 녀석이나 욕을 먹으면서도 이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하는 녀석이나 정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물론 그러한 분위기는 오래 가지는 않습니다. 잠시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내가 뭐라고 지청구를 주니까 암 것도 아닌 걸 가지고 형도 참. 우리는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해요.”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나 원 참. 기가 막혀도 유분수지. 황당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런 짓을 술주정이라고 단언하는 것이지요. 어쨌든 모든 자리가 해피앤딩으로 끝나게 된 것은 다행스런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정신적 에너지는 정말이지 만만하지 않답니다. 봄밤이라서 일단 용서해주기로 했습니다.

 

그나저나 어제 신 선배 장남의 결혼식은 정말이지 많이 부러웠습니다. 축의금 접수를 하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줄 하며, 익히 얼굴을 하는 선배들의 방문도 그렇고.... 나도 언젠가는 아들을 결혼시켜야 하는데, 이렇게 성대하고 잘 기획된 결혼식을 치러낼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때 되면 또 어떻게 되겠지요. 미리 고민하지는 않겠습니다. 볕 참 좋습니다. 오늘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