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봄날이 얄밉다

달빛사랑 2017. 3. 22. 21:00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한 때 나와 함께 일을 했던 몇몇 선배들은 틀니를 하거나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리고, '몇몇' 중의 일부는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든든한 직장을 얻은 후에 노회해지거나 화평주의자가 되었다. 그들의 전사(前史)를 알기 때문에 나는 그들을 연민한다. 내가 '지도'했던 후배들은 사회, 경제적 지위에서 나를 앞서고, 나는 가끔 그들에게서 낯선 영역(정치운동에서 문화운동으로의 전환)에서 더딘 성취를 보이는 나에 대한 냉소를 읽는다. 불편하지만 견딜 수 있다. 한 동안 '외도'하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나로서는 필연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현장'에 있고 그들은 이제 룸펜이 되었거나 관료가 되었으니 활동적 삶에 있어 도덕적 정당성은 내게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자주 부르던 노래의 가사처럼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하지 않았'지만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활동비를 받으며 낡고 부도덕한 세상을 전복하고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것들이 버겁다. 그 흔한 '진보적 출세'도 하지 못하고 날아드는 세금고지서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존재가 의식을 명백히 강제하는 적빈의 시절이여. 잘 먹고 잘 사는 '당신'들이 부럽다. 


돈도 없고 애인도 없이 봄날은 간다. 볕 좋은 공원에서 해바라기를 할 때조차 머릿속에서는 버석버석 마른 잎 밟히는 소리가 난다. 네이버 클라우드에 올라 있던 모든 자료와 동영상들을 지워버렸다. 뭔가 새로운 마음가짐을 도모하기 위해서다. 자질구레한 것들을 비워내야만 건강한 삶의 흔적들이 그곳을 채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준 용돈을 고스란히 내 반찬값으로 소비하신다. 결국 나는 내 식탁을 위해서 어머님께 용돈을 드리고 있는 꼴이다. 드시고 싶은 거 사드시라고 말을 해도 좀처럼 말을 듣지 않으신다. 송구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그게 어머니의 행복이고 보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은 일찍 귀가를 했다. 귀가 어두우신 어머니는 오늘도 곤충의 고치처럼 굽은 등을 하시고 무언가에 열중하고 계셨다. 규모 작은 살림에 뭐가 그리 분주하신지..... 일이 없을 때는 일부러 일을 만드셔서 집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나는 기적을 바란다. 황당하고 어이없고 대책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기적을 꿈 꾸고 있다. 자꾸 눈물만 많아지고 괜스레 허탈해지는 봄날이다. 천연덕스럽게 청청한 하늘이 얄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