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모친 하늘에 들다 (6-30-월, 맑음)
산 카페 성식의 모친이 운명했다. 성식의 모친은 수년째 요양병원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 상태로 살아오셨다. 그런 모친을 바라보는 성식도 불쌍하고 자식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모친도 불쌍하다. 성식은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자식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이제 숨을 거두시고 편안하게 하늘나라 가시는 게 엄마에게도 축복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럴 때마다 새벽에 홀로 주무시듯 하늘에 드신 내 엄마의 소천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다시 생각해도 고맙고 신비스러운 순간이다. 아무튼 그래서였을까, 부고를 받은 순간, 안타까운 마음 한편에 ‘아, 이제 이승의 고된 삶을 마감하고 하늘에 드셨구나.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퇴근해서 집에 와 옷 갈아입고 성모병원장례식장에 갔더니 혁재와 로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로미는 얼굴이 다소 까칠해 보였고, 혁재는 진남색 남방을 입고 있어 그런지 오히려 산뜻해 보였다. 상주인 성식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말을 많이 했고 술도 많이 취해 있었다. 상주가 장례식 첫날에 긴장이 풀릴 리는 없다.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조문객으로부터 경건하지 못하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더 나이가 내심 모친의 죽음을 기다려온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신이 온전한 아들이라면 엄마의 죽음을 반길 리 만무하다.
그럼에도 그가 긴장이 풀린 모습을 보였다면, 그건 긴 세월 동안 요양원 병상에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일종의 코마 상태로 힘겹게 생을 버텨온 모친의 삶에 대한 연민의 반작용일 것이다. 성식에게는 마침내 고통스러운 삶의 미련을 털어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늘나라 가신 엄마가 얼마나 고맙고, 또 다행스러웠겠는가. 그 마음이 표정과 행동으로 드러난 것이겠지. 실제로 힘겹게 연명하는 엄마를 보는 게 무척 고통스럽기도 했을 것이고. 그 고통을 끝낸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의 부담이 줄어들고 안도하는 마음이 생겼겠지.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보통의 마음이다.
9시 반쯤 빈소에서 일어났다. 우리를 배웅하느라 나온 성식의 아들을 불러 아버지가 취했으니 잘 돌봐주라고 당부했다. 경찰이라는 아들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답하며 꾸벅 인사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아비보다 아들이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밖으로 나와 삼삼오오 모여있다가 혁재와 로미, 산이 일행은 부개동 선배 포장마차로 한잔 더하러 떠났고, 나는 산 카페 단골손님이 잡은 택시를 얻어 타고 간석동 교원공제회관까지 와서 62번 버스로 갈아타고 집에 왔다.
공기 중에 물기가 잔뜩 배어 있어서 그런지 여느 밤보다 무척 더웠다. 허공에 손수건을 휘휘 젓다가 꽉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비라도 시원하게 쏟아져 내린다면 한결 시원할 텐데, 비는 감질나게 질금거리기만 할 뿐 시원하게 쏟아지질 않는다. 만수역에서 집까지 오면서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니 그나마 시원한 바람이 나를 맞았다. 아까 퇴근해서 집에 들러 옷 갈아입고 나갈 때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놓고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오늘만큼은 환경오염이니 에너지 절약이니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주문했던 야마하 앰프가 도착했다.
너무 예쁘다. 디자인에서 일단 감동!
내일부터 찬찬히 살펴봐야겠다.
찬물로 샤워하고 일기 쓰고, 음악 듣다가 잠자리에 든다.
내 친구 철영이가 수개월 전에 암으로 죽었다는 카톡이 왔다. 이럴 수가!
오늘 밤에는 성식의 모친과 내 친구 철영의 안식을 위해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