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평화로운 날들에 깊은 감사를! (6-15-일, 비)

달빛사랑 2025. 6. 15. 22:45

예보대로 오후 5시까지는 날씨가 쾌청했고, 5시가 지나면서 날이 흐려지고 비 내리기 시작했다. 점심 이후까지도 날씨가 화창해서 혹시 혁재와 은수에게 연락이 올까 봐 작가회의 임시총회에도 불참한 채 전화를 기다렸지만, 저녁이 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약간 마음이 불편했지만, 그들도 사정이 있으려니 하고 이해하기로 했다.❙다만 더는 그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 후배 창길에게 부탁하기로 했다. 창길에게 전화했더니 그는 때마침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가 있었다. 창길은 내가 “오디오 나를 사람과 승합차 수준의 큰 차가 필요한데, 혹시 네가 수고해 줄 수 있겠어? 일당 줄게”라고 했더니, “일당은 무슨, 나중에 술이나 한잔 사 주세요” 하며 시원하게 대답해 주었다. 고마웠다. 다음 주쯤 적당한 시간을 잡아 오디오를 옮기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6시쯤, 소주 한잔하자며 은준이 전화했다. 만수역 앞 장수족발에서 만나 족발을 먹으며 소주를 마셨다. 창밖으로 비 내리는 풍경이 보기 좋았다. 식당에 들어올 때까지는 빗방울이 얇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차 굵어졌다. 소주 한 병을 비울 때쯤 근처에 작업실이 있는 화가 장명규 선배도 불러냈다. 은준과도 잘 아는 사이라서 자연스레 어울렸다. 장 선배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언제나 진지한 은준의 다변(多辯)을 듣는, 비 내리는 여름날의 풍경이 너무 평화로워서 마음이 울컥했다. 중동에서는 현재 이란과 이스라엘이 전쟁 중이라 수많은 사람이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평화로워도 되는 건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족발집에서 셋이 소주 3병을 마신 후, 장 선배 작업실 1층에 있는 퓨전 맥줏집 ‘역전 할머니 맥주’로 2차를 갔다. 비는 더욱 거세게 내렸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은준의 어깨에서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장 선배와 나의 한쪽 어깨도 빗물에 젖었다. 그는 왼쪽 어깨가 젖었고 나는 오른쪽 어깨가 젖었다. 젖은 몸에 에어컨 바람을 쐬니 잠시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썩 나쁘지는 않았다. 맥줏집에서는 주로 새로 출범한 민주당 정권과 윤석열의 내란, 중동의 전쟁과 희망 없는 인류의 미래 등에 관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눴다. 대체로 정치로부터는 희망을 찾을 수 없기에 예술과 예술가들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는 것으로 말을 맺었다.

 

맥줏집을 나와 장 선배는 먼저 들어가고 은준은 우리 집에 와서 소주 한 병을 더 나눠 마신 후 돌아갔다. 그가 우리 집에 오는 날이면 늘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왔는데, 오늘은 맨손으로 왔다. 족발집 술값을 그가 계산했기 때문일 것이다. 늘 내가 술값을 계산하고, 우리 집에 올 때 과자나 아이스크림, 소주 등을 사게 되면 그가 계산했다. 무엇보다 오늘은 슈퍼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집으로 왔기 때문에 아이스크림 살 틈이 없기도 했다. 그는 작가회의 회원도 아니면서 작가회의 임시총회 결과에 무척이나 관심이 컸다. 9시쯤 페이스북을 통해 결과가 올라왔다. 비대위원장과 임시 사무처장을 인선하고 총회를 잘 마무리했다는 내용이었다. 다행이다. 이번에는 미안하게도 슬쩍 후배들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었다. 두고두고 갚으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