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으로 시작해 냉면과 수육까지 (5-7-수, 맑음)
오랜만에 짜장면과 탕수육을 (배달이 아닌) 식당에서 먹었다. 선배들과 점심 먹으러 가다가 교육청 후문에 있는 중국집 ‘만리향’에서 내건 현수막을 보는 순간 호기심이 생겼다. 그곳은 원래 ‘사천 불짬뽕’ 집이었는데, 주인이 바뀐 모양이었다. 아무튼 현수막에 의하면, 점심(오전 11시~오후 2시) 특선으로 짜장면이 5,000원, 짬뽕이 6,000원, 탕수육이 10,000원이었는데, 가격도 가격이려니와 짜장면 먹어본 지 오래 되어 그런지 갑자기 짜장면이 먹고 싶어졌다. 결국 세 사람은 설렁탕 먹으려던 생각을 바꿔 만리향으로 들어갔다.
12시 전이었는데도 이미 식당은 거의 만석이었다. 오호, 기대감 증폭! 우리는 짜장면 3개와 탕수육 하나를 주문했다. 10분쯤 기다리니 짜장면이 나왔고 다시 10분쯤 뒤에 탕수육이 나왔다. 맛은 솔직히 그냥 그랬다. 예상할 수 있는 보통 중국집 짜장면 맛 그대로였다. 특히 탕수육 소스는 신 맛이 너무 강해 내 입맛에 안 맞았다. 호기심에 들어와 먹긴 했지만, 다음에는 탕수육을 주문하진 않을 거 같다. 물론 이런 맛이 취향인 손님들도 있을 테니,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내 판단이다.
퇴근하면서 은준에게 '일부러' 연락했다. 얼마 전, 그러니까 야당 대통령 후보 이재명 씨의 선거법 위반 상고심에서 대법원이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한 날, 결과가 나오자마자 은준은 내게 전화했었다.❙이재명을 한결같이 싫어해 온 그는 유쾌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해 “형, 이번에 잘하면 이재명 날려버릴 수 있겠는데요.” 하며 킥킥 웃었는데, 낮술을 했는지 취한 목소리였다. 그러고는 그 특유의 장광설을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전철 안이기도 했고, 약간 짜증스러워 “너는 내게 할 얘기가 정치 얘기밖에 없냐? 지금 전철 안이다. 이따가 다시 통화하자”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한 후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 그날은 정말 짜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재명을 두둔해서가 아니라 대법원의 이번 조치는 너무 전례 없이 서두르는 감이 있었고, 뭔가 짜맞춘 계획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지는 ‘작전’ 같았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명백한 선거 개입이고 유권자의 참정권, 선택권을 박탈하는 폭거가 아닐 수 없다. 내란 수괴 윤통이 탄핵 이후에도 여전히 현실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 중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이번 일련의 과정을 주도한 대법원장이 바로 윤석열과 절친 사이인 데다가 그의 법관 이력을 보면 매우 공안적이고 수구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구속됐던 윤을 견강부회의 논리로 석방한, 내란 사건 담당 판사 지귀연, 윤의 구속영장 재청구를 힘으로 눌러 막은 검찰총장 심우정, 그리고 이번 파기환송 시나리오의 주체인 노희대까지 모두 윤석열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어온 내란 동조 세력들이다. 이런 윤의 충견들에 대해 화가 나 있던 차에 은준은 전화해서 킬킬거리는 게 무척 짜증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싫은 티를 노골적으로 팍팍 낸 거다. 다소 시간이 지나 생각하니 은준은 내게 농담으로 말했을 텐데, 내가 너무 불쾌하게 반응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오늘 술 사주려고 연락한 것이다.
제물포 북광장 ‘신가네 숯불갈비’에서 만나 저녁을 먹었는데, 와, 이 집 정말 가성비 최고였다. 칠레산 돼지갈비 1인분(250g)에 11,000원, 각종 채소는 물론이고 기본으로 제공되는 반찬들도 상당히 싱싱하고 맛있었다. 그래서 일찍 가지 않으면 30분 이상 대기하고 있다가 먹어야 하는 집이라고 한다. 내가 도착했을 때, 대부분의 탁자에는 ‘예약석’ 안내 팻말이 놓여있었다. 은준이 미리 가서 창가 쪽에 자리를 맡아놓지 않았다면 우리도 아마 오래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특히 오늘은 어버이날을 맞아 가족 단위로 온 손님들이 많아 식당은 더욱 북적였다. 우리는 소주 2병을 마시고 갈비 3인분을 먹었다. 평소보다 극히 적은 양이었으나, 채소와 찌개, 서비스 안주들이 많다 보니, 양이 적당하게 느껴졌다.
‘신가네’를 나와 근처 ‘백령면옥’에 들러 수육과 물냉면을 먹었다. 역시 선주후면, 술 마신 다음에 먹는 냉면은 맛이 있다. 은준은 냉면집에서도 소주를 한 병 주문했지만, 나는 딱 한 잔 받았을 뿐 더 마시지 않았다. 배가 부르니 술이 당기질 않았다. 대신 대화는 많이 나눴다. 내가 싫어하는 포인트를 알고 있는 그는 오늘 다른 때보다 현저하게 ‘정치 얘기’를 삼갔다. 그가 하는 정치 얘기란 게 주로 이재명과 민주당을 힐난하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선배의 눈치를 보고 조심하는 모습을 보니 고마웠다.
은준과 나는 전철역(제물포역)에서 헤어졌다. 집 앞에 도착해 열려 있는 슈퍼를 보면 아이스크림을 살지 말지를 잠깐 고민했다. 결국 사지 않았다. 끊지는 못하더라도 먹는 간격을 적어도 일주일 이상 둘 생각이다. 오늘은 짜장면에 탕수육, 숯불갈비에 냉면, 수육 등 정말 원 없이 이것저것 먹은 날이다. 운동 딱 40분만 하고 취침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