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하는 일 (4-23-수, 맑음)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고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캬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람짐이 있을 뿐이다.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 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네
꽃
병
에
꽂
아
다
오
회사와의 계약 기간이 이제 4개월 남았다. 그래서 앞으로는 회사에 이틀만 나가고 나머지 5일 은 퇴사 이후 할 일을 고민해 보기로 했는데, 늘 생각하는 거지만, 어쩌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해야 할 무엇’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생활이 풀어졌기 때문인데, 특히 지적 게으름과 느슨함은 매우 심각해서 하루아침에 초등학생 노트의 네모 칸 속에 들어갈 만큼 반듯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단 가장 노력을 집중해야 할 건 글쓰기이지만, 기본적인 의식주를 위한 재생산 수단(방법)도 간구해야만 하는 처지이다. ‘야훼 이레’를 한 번도 의심한 적은 없지만,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고 자신을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듯이 내 몫의 고민과 노력은 필수다. 인간이 자신의 할 일을 다한 후에야 비로소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하듯이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앞으로는 주변에 적을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거짓말과 비겁함을 용인하겠다는 말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노력하겠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쉽게 어울릴 수 없다면 일정한 거리를 두면 될 일이지, 상대를 험담하거나 험담하는 사람들과 뇌동하지 않을 작정이다. 동성 간이든 이성 간이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상대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맞추려 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대가 원한다고 나의 신념을 꺾을 생각도 없다. 굳이 사랑받으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물 흐르듯 교감하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전에는 운동하고 빨래하고 옷장을 정리했다. 속이 다 시원했다. 그리고 중국 테무에서 주문한 생활용품들을 택배로 받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채칼과 충전 케이블 등 홈페이지 사진이나 설명과는 많이 다른 제품도 섞여 있어 속상했다. 역시 쇼핑은 직접 매장에서 보고 구매하는 게 가장 확실하다. 그래도 스테인리스 병따개와 휴대용 치실 보관함, 치약 압출기, 흑요석 펜던트 목걸이 등은 맘에 들었다.
오후에는 내내 최승자의 시집을 필사했다. 노트에 펜으로 옮겨 적은 게 아니고 컴퓨터 키보드로 타이핑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사전적 의미의) 필사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키보드와 모니터가 필기도구가 되었으니 전자 필사도 필사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필사의 목적이 텍스트를 옮겨 적으며 머릿속에 내용을 입력하는 과정 아닌가? 그 과정에서 해당 텍스트의 숨은 의미를 음미해 보는 것일 테고. 그렇다면 컴퓨터 키보드 작업도 필사와 다를 게 없다.
아무튼 대학 시절부터 좋아했던 최승자 시인의 시를 발표 순서대로 읽고 타이핑해 나가도 보니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지고 옛 생각이 많이 났다. 6권의 시집 모두를 5월 중순까지 (내 나름의 의미로) 필사하면서 나의 감성도 끌어올려 볼 생각이다. 참 좋다. 이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