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흔들리는 것은 나인가 계절인가? (10-19-토, 흐리고 비)

달빛사랑 2024. 10. 19. 23:43

 

지난 금요일 취중에 몇몇 후배들에게 전화하고 문자 보냈다. 물론 함께 술 마시던 장(張)의 부추김도 한몫했지만, 모두가 여자 후배들이었다. 친한 후배들이니 전화하고 문자 보낸 게 큰 실례는 아니지만, 문제는 그녀들이 보낸 답 문자와 전화를 확인하지 못할 만큼 취해버렸다는 것이다.

 

하루가 지난 오늘에야 비로소 확인한 문자도 두 통이었다. (내가 먼저) 잘 지내느냐는 문자를 보내 놓고, 정작 그녀들이 답장을 보내거나 전화를 걸었을 때는 받지 못하거나 무반응이었다. 때문에 그녀들은 하나 같이 “잘 지내시죠?”라든가, “뭔 일 있는 거 아니죠?”와 같은 문자를 재차 보냈던 것이다. 하루가 지난 다음 그 문자들을 확인하는 일은 자신에 대한 모멸을 축적하는 일이다.

 

한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왜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무척 그리워하고 있다는 건가? 스스로 영원한 사랑은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내심 어설픈 연애라도 갈망하고 있었던 걸까? 그럴 리가, 정말 그럴 리가……. 단순한 술버릇이라고 여기고는 있지만, 하고 많은 술버릇 중에 하필이면 취중 문자 보내기와 전화 걸기가 웬 말인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헤어진 애인에게 취중에 전화하거나 늦은 밤 술 마시고 귀가하다가 “자니?”라는 문자를 보내는 일은 정말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창피한 일이다. 즉 이튿날 술이 깨고 자신의 전화와 문자 기록을 확인한 후에는 영락없이 이불을 발로 차며 비명을 지르게 되는데, 십수 년 전 나에게도 한때 이런 몹쓸 버릇이 붙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예순이 넘은 마당에, 도대체 왜 나에게 갑자기 이런 버릇이 나타난 것일까?

 

물론 엊그제 내가 취중에 연락했던 후배들은 ‘헤어진 애인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중 한 명은 공식적으로 연애한 건 아니더라도 확실히 나에게 연심(戀心)을 품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나 또한 그녀에게 호감이 있었고. 그렇다면 정작 이것도 문제다. 책임지지 못할 거면서 왜 취하기만 하면 자꾸 그 사람에게 (여지를 줄 수 있는) 연락하는 거냐고? 이런 추근댐이 바람둥이들의 전형적인 어장관리가 아니고 무엇이냔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면서 내가 많이 흔들린다. 계절은 가만히 있는데 마음이 저 혼자 널을 뛰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나는 가만히 있는데 가을이 저 혼자 까불대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취중에 ‘저지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건 무척 무책임하고 곤혹스러운 일이다. 술은 많이 마시는 게 멋진 게 아니라 품위 있게 마시는 게 멋진 일이다. 술에 생각이나 판단력을 빼앗기거나 의탁하기 시작하면 반드시 한 번 이상의 모멸과 후회를 만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자꾸 이 가을에 흔들릴 생각인가. 아니, 자꾸만 흔들리는 이 계절, 혹은 자신을 그냥 방치할 생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