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서울에서 찾아온 후배들 (9-21-토, 흐림)

달빛사랑 2024. 9. 21. 20:50

제주도 시절. 서 있는 정혁, 은진 커플과 전 부치는 중인 그리운 영택이 ❙ 은진이 페이스북에서

 

계획은 깨졌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던 하루였다. 어제 백신도 맞았고 원고도 교정해야 해서 주말은 꼬박 집에 머물기로 작정했는데, 사람 일이라는 게 어디 계획대로만 되던가. 권 선생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며 꼭 넣어달라고 부탁한 (권 선생은 교정과 윤문을 끝내고 디자인과 편집 작업에 들어간 이후에도 수시로 새로운 원고를 써 보내며, 그야말로 추가해 달라며 ‘떼를 써서’ 편집자들과 나를 무척 피곤하게 했다) 추가 원고 ‘추모원 가는 길’을 윤문 하다가 대학 후배(은진이는 연세대 간호학과를 졸업했다)이자 문화운동가인 은진, 정혁 부부의 전화를 받았다. 은진이는 “작전동에 업무차 왔는데, 정혁이가 계봉 형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네요. 형, 오후에 시간 돼요?” 하고 물었다. 순간 ‘일해야 하는데……, 게다가 백신까지 맞았는데 술 마셔도 되나? 이번 달 지출이 이만저만 아닌데……’ 등 머릿속에 다양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모든 생각과 갈등을 떨쳐버리게 할 만큼 은진이와 정혁이는 내게 반가운 후배들이다. 그래서 갈매기에서 만났다.

 

그들 부부는 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2015년 초에 돌연 재산을 처분해 (그래 봐야 몇천밖에 안 됐지만) 6개월을 목표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정리 여행을 계속했는데, 마지막 여행지가 제주도였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서 지인을 만났고, 남은 돈으로 연세(제주도는 일 년 집세를 한꺼번에 낸다. 그걸 연세라고 한다) 내고 집을 얻어 그곳에서 수년간 정착하게 된다. 주인을 대신해 집을 돌보는 한편 집 뒤편 귤나무들도 가꾸는 걸 조건으로 싸게 얻었다고 하는데, 그 덕분에 나와 혁재, 근직이는 물론 인천의 지인들은 물가 비싼 제주도에서 숙박비 걱정 안 하고 은진이네 집에서 머물다 오곤 했다. 물론 여름에는 에어컨을 켜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트니 전기세와 난방비 정도는 건넸지만, 그건 한 사람당 만 원 정도 수준이어서 은진과 정혁이 베푸는, 이를테면 생선 말린 걸 비롯해 갖은 밑반찬을 준다거나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게 하고 낚시터까지 그들 차로 데려가고 오는 수고로움에 비한다면 턱도 없는 금액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4년 전쯤 5년 간의 제주도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곳이지만 제주도는 재생산 구조가 확보되지 않으면 무척 살기 어려운 섬이다. 또한 타지 사람들에게 매우 배타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특장점을 살려 생계를 유지하기에는 도시가 나았을 것이다.

 

갈매기에는 내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 구월동 먹자골목은 상인연합회 가을 축제로 무척 북적였다. 갈매기 별실을 행사 참가자들의 탈의실 겸 대기실로 쓰다 보니 앳된 무용수들과 한복 차림의 여성들이 수시로 드나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조구 형도 지인(하명중 감독)을 기다리고 계셨는데, 축제로 술집이 무척 번잡하게 될 걸 모르고 있던 눈치였다. 잠시 후에 은진 정혁 부부가 왔고, 은진의 전화를 받은 혁재도 도착했다. 그렇게 그들과 두어 시간 그간의 안부를 나누며 많이 웃다가 돌아왔다. 은진 부부와 나는 먼저 나와 함께 전철을 타고 오다 환승을 위해 시청역에서 헤어졌고, 혁재는 뒤늦게 도착한 산이 일행들과 갈매기에 남았다. 집에 와 늘 하던 대로 찬물로 샤워했더니 으스스 떨리더라. 이제야 비로소 가을다운 가을이 시작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