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상으로 (9-19-목, 맑음)
긴 연휴가 끝났다. 명절 내내 비교적 평온한 시간이 흘렀지만, 막상 연휴가 끝나니 알 수 없는 헛헛함이 밀려든다. 매일 거센 강도로 일해 온 사람도 아니면서 연휴 끝났다고 뭔 놈의 헛헛함을 느낀다는 건지 스스로 생각해도 민망하긴 하지만, 이런 느낌은 명백하고, 또한 익숙하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고, 부모님 생전, 명절 인사하러 온 가족들이 왁자지껄 떠들다가 돌아간 후에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
특히 엄마의 감정에 내 감정을 자주 이입하던 때에는 자녀들이 돌아간 후 썰렁해진 집에서 엄마가 느꼈을 쓸쓸함에 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풀어진 마음조차 용인되던 휴식의 시간이 끝나거나 왁자지껄하게 함께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내 헛헛한 고적함이 찾아드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견디기 힘들거나 막 부담스러운 시간이 아니다. 통과의례처럼 익숙한 순간이고 친숙한 감정이라 오히려 가끔은 번잡했던 마음이 정화되는 시간이다.
9시가 다 돼서 잠에서 깼다. 출근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만약을 대비해 내일까지 연차 휴가를 신청해 뒀던 터라서 출근하지 않아도 되긴 했지만, 집에만 있기가 너무 심심해서 그냥 출근할 생각이었다. 10시쯤 비서실 주무관이 전화해서 오늘 점심은 교육감과 함께 먹을 예정인데, (예약을 위해) 메뉴는 무엇으로 하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잠깐 (늦게라도 점심시간에 맞춰 출근할까) 고민하다가 “아직 집이에요. 오늘은 회식에서 빠질게요” 했다. 그러자 박 비서는 “예, 보좌관님, 알겠습니다. 그럼 편히 쉬세요” 했다. 수화기 너머 박 비서의 목소리가 무척 경쾌하게 들렸다.
통화를 끝내고 늦은 아침을 먹었다. 평소에는 아침을 먹지 않지만, 해장도 할 겸해서 오랜만에 '나만의 채소 라면'을 끓여 먹었다. 오후에는 기어코 아이스크림도 사 먹었다. 술 마신 다음날은 매번 과식한다. 저녁에 운동량을 늘리긴 했지만, 오래된 루틴을 떨쳐내질 못하고 있다.
뉴스를 보다가 드는 생각, 추석 명절 기간에 나타난 민심이 수상하다. 보수언론마저 정권의 안일함과 청와대의 내로남불에 관해 비판적이다. 오죽하면 그럴까. 중동의 전세는 여전히 일촉즉발의 상황이고 세계 곳곳에선 이해할 수 없는 자연재해가 발생해 종말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이기를 포기한 듯 인간을 억압하는 땅 위의 모든 짐승만도 못한 인간들과 그들의 시간을 경멸한다.
새벽녘 꿈에 오래전 소꿉친구이자 20대 내내 나의 연인이었던 Y가 나왔다. 그녀와 팔짱을 끼고 골목길을 걸었고 그녀의 집인지 우리집인지 모를 어떤 집 앞에서 입을 맞췄는데, 내 품 안의 그녀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뜻밖이다. 최근에 그녀를 떠올린 적이 전혀 없는데, 왜 갑자기 그녀가 꿈에 나왔을까. 마음 한편에 여전히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는 것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만나지 못했는데……, 그럴 리는 없지. 문제는 그녀를 안고 입을 맞췄을 때, 당황스럽기보다는 무척 편안하고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이건 도대체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