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둘째 날 ❙ 누나들 (9-15-일, 맑음)
느지막이 일어났다. 누나들은 돌아가고 깨끗하게 정리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깔끔한 형제들 같으니라고’, 속으로 생각하며 냉장고를 열었더니 못 보던 반찬들이 많이 들어찼다. 가기 전에 만들어 놓고 간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집에 누가 오는 게 무척 귀찮다. 심지어 아들이 오는 것조차. 믿을 수 있겠는가, 아들이 와도 자고 가는 건 싫었다. 일단 그 아이는 무척 집을 어지르기도 하고, 또 아이가 있는 이상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한다는 아비로서의 강박 때문이다. 정작 아들은 전혀 미적거리지 않고 “아빠, 갈게요”하고 이내 떠나는데도 말이다.
어쨌든 누나들은 성별이 달라서 서로 삼갈 것도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그녀들은 자꾸만 말을 시킨다. “동생, 이거 먹어 봐”, “동생, 이거 빨아 놓을까?”, “동생, 뭐 좋아해?” 등등, 생각해 보면 모두 나를 위하거나 배려하는 질문들인데, 그게 귀찮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무척 차갑게 느껴져서 다음에 누나들이 오면 살갑게 대해줘야겠다고 다짐하곤 하지만, 막상 마주하면 예의 그 ‘무심함’이 또 발현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약간 마음의 변화가 있다. 아무도 안 오는 게 가장 좋지만, 매형 돌아가신 후 혼자 지내는 게 무척 힘들다는 큰누나와 그 누나를 챙기는 작은누나가 최근 내 집에 자주 오는데, 처음에는 귀찮았다가 막상 그분들이 돌아가고 나면 왠지 모를 허전이 밀려오곤 한다. 매일 오는 건 부담스럽지만, 가끔 와서 함께 밥 먹고 옛 얘기 나누다가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심한 사람일지라도 나이 들면 잠복해 있던 형제애 DNA가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모양이다. 누나들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몫을 장남인 내게 많이 양보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참 미안한 순간들이 많다. 그런데도 나이 들어서까지 나를 챙기고 어려워하는 걸 보면 괜스레 미안하다. 앞으로 우리가 함께 살아갈 날이 며칠이나 될까? 그래봐야 10년 안팎일 것인데, 남은 날들이나마 형제끼리 마음 터놓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배진호 선배 빈소에는 가지 않았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빈소에 혼자 가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망할 놈의 내향형 성격! 마음속으로만 선배의 영원한 안식을 기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