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하고 집요한 습관에 관하여 ( 9-2-월, 비 내리고 갬)
오전부터 오후까지 게릴라처럼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출근했지만, 우산을 두고 퇴근했는데, 청사 현관을 나서자마자 빗방울 톡톡 떨어졌다. '주르륵'이 아니라 '톡톡'이었으므로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우산 가져올 생각을 하다가, 말았다. 대신 전철 타러 가다가 갈매기 쪽으로 방향을 잡았지만, 그건 흔한 일이다. 비는 내 정서의 색깔과 무게와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사물이다. 여러 번 비에 휘둘렸으나, 비에 휘둘리는 마음이 부끄러운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나도 알고 비도 안다. 비는 늘 내 앞에서 당당하지만, 그렇다고 비가 항상 나와 함께 있는 건 아니다. 항상 있는 게 아니라서 어쩌면 더 당당하게 구는 걸지도 모르겠다. 오늘만 해도 보운 형과 점심때 양평해장국 먹으로 cgv 쪽으로 걸어가는데, 빗방울이 톡톡 떨어졌다. 개의치 않았다. 형과 나 둘 다 아는 어느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하느라고 우리는 분주했으므로 톡톡 떨어지는 물방울을 비라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서운했을까, 늘 나와의 관계에서 갑이었던 비는 나의 관심을 받지 못해서 서운했기 때문일까. 우리가 식당에 들어와 주문을 하고 음식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식당 밖 거리에는 거센 비가 내렸다. 잠깐 사이였다. 30초만 늦게 들어왔어도 우리는 '톡톡'이 아니라 '주르륵 주르륵'을 만나야 했다. 보운 형은 거세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조금만 늦었어도 쫄딱 맞았을 텐데..... 다행이네"라고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그건 다행일 리가 없어요. 저건 의도된 시위랍니다. 자신을 봐 달라는 오버액션이지요'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끝내고 식당을 나왔을 때, 비는 토라진 건지 실망한 건지 톡톡조차 없었다. 덕분에 형과 나는 시청 광장까지 가서 산책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날은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내가 보지 못하 사이에 비가 왔을까? 그건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청사를 나섰을 때 비는 톡톡 내 옷과 가방 위를 간 보듯 치고 갔다. 비의 의도가 나로 하여금 모종의 행동을 하게 한 것이었다면, 성공적이었다. 나는 비 때문에 집으로 가던 발길을 돌려 단골 술집으로 향했으니까. 갈매기에 도착했을 때, 배가 볼록 나온 후배 하나가 오징어볶음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뒤늦게 나를 발견하고 "형님 오셨어요?" 인사했지만, 반갑기보다는 안쓰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