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 않을 결심 (8-30-금, 맑음)
기호일보 주필의 전화를 받고 당분간 충전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 칼럼을 송고하지 못할 것 같다고 선언한 것 빼고는 특별한 일은 없었다. 주필은 적이 당황했고, “에이, 인천의 문필가께서 왜 이러실까?”라며 며칠간 시간을 더 줄 테니 이달 말까지만 보내달라고 사정했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얼추 8년의 써온 것 같다. 다양한 분야, 다양한 주제로 참 많은 글을 써 보냈다. 그 긴 세월 동안 칼럼을 쓰면서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 잡지와 달리 일간 신문의 경우 마감일을 어기면 여러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마감 준수를 엄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정권 들어서며 정말 쉬고 싶단 생각이 자주 들었다. 시인인 내가 문화예술에 관한 정서적 글을 쓰기보다는 늘 부도덕한 권력의 전횡과 현실의 부조리를 성토, 한탄하는 글만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정부가 저지르는 목불인견의 작태를 2년 동안 바라보며 내 영혼은 무척이나 황폐해졌다. 전혀 들을 생각이 없는 안하무인의 정권을 향한 나의 비판이 어느 순간부터 부질없어 보였다. 성질도 강퍅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년 가을부터 주필의 원고 마감 문자를 받을 때마다 나는 소재 고갈에 시달리니 이제 칼럼 위원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밝혀 왔다. 하지만 주필은 그때마다 늘 예의 그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내 결정을 번복해 달라고 사정했고, 마음 약한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알겠어요” 하며 원고를 송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선택 장애에 시달리다 상대의 마음에 상처 주기 싫어서 마음에도 없는 선택을 하게 되고, 나중에 그 일로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현 정부하에서는 곱고 예쁜 글이 나올 듯싶지 않다. 세상에 글이 모두 ‘고와야 한다’라는 법은 없다. 태평성대에도 올곧은 문사의 붓끝은 날카로운 법이다. 다만 범부(凡夫)인 나는 더는 모멸의 시간을 견디며 영혼이 황폐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러면서 문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탈하고 평범한 하루가 실은 어떤 이들에게는 얼마나 부럽고 소중한 하루일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물리적인 공격을 받지 않았다고 평범한 하루가 아니다. 육체적 상처는 없으나 정신적 피폐함을 걷잡을 수 없는, 그런 지독한 하루도 있을 수 있다. 2년 전부터 내 일상이 그렇다. 답답함과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서니,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매번 ‘나도 가족도 다치지 않은 무탈한 하루였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하는, 판단의 혼란을 겪게 된 것이다. 나 이외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다채로운가. 사물과 작은 생명들의 하루는 또 얼마나 숨 가뿐가. 우주의 기준으로 본다면, 무미건조한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다만 세상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