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집 들렀다 갈매기까지 (8-12-월, 맑음)
사실 훈은 몇 주 전부터 여러 차례 전화했었다. 한데, 그가 전화할 때마다 묘하게도 나는 컨디션이 안 좋거나 다른 일정이 있었다. 오늘도 컨디션이 좋지는 않았다. 너무 덥기도 하고 코로나가 다시 극성이라서 가급적 술자리를 삼가려고 했으나, 오늘마저 (만남을) 거절한다면 그는 분명 '저 형이 일부러 나를 피하는 건가?'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사실 T 성향의 훈은 담백하기 때문에 그리 생각할 리가 없었을 테지만, F 성향의 나는 지레 그런 걱정이 들었던 거다. 그리하여 6시 15분쯤 오랜만에 '인천집'에서 훈을 만났다. 초저녁인데 인천집은 손님들로 붐볐다. 날이 더워 그런지 소주 (마시는) 손님보다 막걸리 손님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도 막걸리와 두부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훈은 얼굴이 가무잡잡하게 타 있었다. 표정은 무척 밝았다. 둘이서 막걸리 다섯 병을 마셨다. 적지 않은 양이다. 어울리지 않게 우리는 국내 정치 정세와 미국 대선, 그리고 ETF에 관해 대화했다. 그리고 2명 정도의 지인을 술 상위에 등판시킨 후 늘 그랬던 것처럼 험담했다. 그중 후배 J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대체로 듣기만 했는데, 그가 비난하는 J는 나를 무척 따르는 후배였으므로 훈은 J에 관한 이야기하는 내내 나도 자신의 말에 동의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에이, 설마"라든가, "정말 그랬어?"와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훈의 이야기를 따라갔다. 그러면서 속으로 '아, 두 사람은 정말 코드가 안 맞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8시 40분쯤 인천집을 나왔다. 훈은 먼저 가고 나는 갈매기에 들렀다. 영옥과 미경이, 퍼포먼스 작가 이탈이 술 마시고 있었다. 그들과 합석하여 소주를 마시다 10시쯤 먼저 갈매기를 나왔다. 예술회관 광장을 지나 6번 출구로 들어가서 지하철 플랫폼까지 가는 그 짧은 시간에도 온몸이 땀에 젖었다. 다행이 내려가자마자 기차가 도착했다. 전동차 안에서 만난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어찌나 고마운지......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일기 쓰려고 책상 앞에 앉으니 문득 (취기 때문일까?) YK가 생각났다. 보고 싶었다. 그 마음의 정체를 나는 알고 있다. 전화하기에는 늦은 시간이어서 '널널할 때 한 번 보자'라고 문자를 보냈다. 15분쯤 지나서 답장이 왔다. 8월 말에 그녀로부터 연락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