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약 서류를 제출하다 (7-8-월, 종일 비)
월요일은 비번이었으나 재계약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해서 오전에 출근했다. 사실 내일 제출해도 상관없었지만, 보운 형이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형을 도와주러 '일부러' 출근했다. 다음 달이면 교육청에서 일한 지 만 4년이다. 면접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400일이 더 지난 것이다. 그 4년 동안 나에게는 무척 많은 변화가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그 사이에 고아가 되었다는 것이다.
교육청에 들어가던 그 해에는 엄마가 생존해 계셨다. 청에 들어갔을 때, 문밖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하다. 그리고 이듬해 1월, 내가 교육청에 들어간 지 4개월 만에 엄마는 나만 이곳에 남겨둔 채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를 잃은 것은 한없이 슬픈 일이지만,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항상 내 걱정하시느라 맘 졸이던 엄마에게 다소 안도감을 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명함을 드리자 한참을 보고 또 보시던 우리 엄마, 사실 나에게는 교육청이 제대로 된 월급이 나오는 첫 직장인 셈이니 엄마의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아무튼 그 4년 동안 돈도 좀 모으고, 선후배 지인들에게 술도 자주 사고, 숙원이던 임플란트도 10개나 할 수 있었다. 남들은 직장을 퇴직할 나이에 나는 계약직이긴 하지만 5년간의 일자리를 얻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출근하자마자 학생교육문화회관 M 팀장이 보내준 서류와 중등교육과 P 장학사가 보내준 서류를 취합해서 내 부서인 정책기획조정팀 주무관에게 보내주었다. 보운 형의 서류도 검토한 후 해당 부서로 보내주고 나니 오전이 다 갔다. 일처리를 다하고 나니 허기가 몰려왔다. 어제 술 마셔서 그런지 얼큰한 게 먹고 싶었다. 점심때까지도 비는 주룩주룩 잘도 내렸다. 나는 큰 우산을 골라 쓰고 보운 형과 청사 밖으로 나가서 돼지국밥을 먹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비 오는 날에는 뜨거운 칼국수나 국밥이 더욱 당긴다. 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너무 맛있어서 공깃밥을 한 그릇 더 시켰다. 밥값은 보운 형이 냈다. 내가 내려하다가 보운 형이 카드를 들고는 "이미 카드 꺼냈어" 했다.
퇴근길에도 비가 내렸다. 오늘은 비 속을 걸어 출근했고 비 속을 걸아 퇴근했다. 저녁을 준비할 때는 싱크대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청경채, 버섯, 양배추, 양파, 마늘, 파, 숙주, 깻잎을 넣은) 채소라면을 끓여 먹었다. 비로소 어제의 주취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밤에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기어이' 나갔다 왔다. 며칠전 가족끼리 식사한 날, 누나가 사준 아이스크림 (사이즈가 작긴 했지만) 2통을 모두 먹었고, 오늘 또 한 통을 먹었으니, 금토일월, 나흘 동안 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은 셈이다. 그것도 투게더 한 통을..... 중독을 이만큼 무섭다. 그러나 그 행복감, 포기할 수가 없다. 지난 토요일에 만난 H도 말했다. "선배,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 행복감을 포기하고 살아야 해요." 했다. 나도 "그러게 말이야" 하며 호응해 주었지만, 엉큼한 나는 내심 이 중독에서 벗어나고 싶고, 벗어나려 한때 노력했었다. 다만 매번 노력이 헛수고가 되거나 유혹에 홀랑 넘어가서 탈이었을 뿐. 일단 일주일에 맥시멈 2통, 그 이상을 먹지 않기로 하고 조금씩 텀을 늘려나가야겠다.
늦음밤 수상록 의뢰인은 자신이 아파트입주자대표 회의에서 겪었던 일이라며 장문의 글을 써 보냈다. 다시 또 글을 수정했다. 벌써 몇 차례 수정인지 기억도 안 난다. 소심한 양반이지만 글에 대한 욕망은 큰 것 같다. 식사 후 정리해서 보내줬더니 "좋습니다" 하고 답장이 왔다. 그나저나 A4용지 186쪽이나 된다.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다인아트 윤 대표에게 잔소리 좀 듣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