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도미노처럼 깨진 약속 ❚ 뜻밖의 만남 (7-5-금, 밤비)

달빛사랑 2024. 7. 5. 16:24

'주점 갈매기의 꿈'에서 종우 형이 찍어주다

 

큰누나 내외, 작은누나, 동생 내외와 작은 조카 등과 점심 먹었다. 누나들과는 최근에 자주 식사했으나 동생 부부와는 오랜만이다. 오늘 모임도 동생이 주선했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작은 조카 우진이는 얼마 전 텀블벅(후원금 모금)으로 영화를 만들었는데, 사촌 형인 아들 수현이가 꽤 큰 액수를 후원했던 모양이다. 기특했다. 형제가 없는 수현이가 앞으로도 사촌 동생들과 친형제처럼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식사 후 매형은 근무를 위해 회사로 돌아갔고 남은 사람들은 근처 카페에 들어가 담소를 나눴다. 늘 만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 4남매는 여러 면에서 참 많이 다르다. 그 ‘다름’으로 인해 살면서 몇 차례의 오해가 있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성정들이 온화한 편이라서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고 오늘까지 일반 가족의 평균치보다는 훨씬 좋은 결속력과 우애를 지켜오고 있다.

 

오후에는 로미와 혁재를 만나기로 했는데, 착오가 생겨 약속이 깨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부개동에서 명수와 술 마시고 있었다. 부개동에서 1차를 끝낸 명수와 혁재 일행은 2차를 위해 명수네 집이 있는 제물포로 이동했고, 역시 제물포에 사는 은준에게도 연락했던 것인데, 그 사실을 은준은 내게 전화했다. 도무지 비밀이 있을 수 없는 관계망이다. 아무튼 그들은 내게 제물포에 합류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술도 많이 마셨고, 거기까지 가기가 귀찮아서 거절했다. 갈매기도 오랜만에 손님이 많았다. 종우 형의 표정이 내내 밝았다. 갈매기를 나올 때 형수가 깻잎장아찌를 넣어주었다.

 

갈매기를 나와 전철 타려고 막 예술회관역 6번 출구로 들어섰을 때 H로부터 전화가 왔다. “선배님, 어디세요? 저는 지금 구월동 ‘올빼미’에 있어요”라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취기가 느껴졌다. 한 3초간, 만날까 말까를 고민했다. 오늘은 정말 피곤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말에 잠깐 얼굴이나마 보려고 예술회관 광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생각보다 취하지는 않아 보였다. “어디 가서 한잔해요” 하는 그녀를 데리고 밴댕이 골목 입구 실내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그녀는 앉자마자 “오늘 마지막 근무했어요” 했다. 나를 만나기 전 팀장들과 마지막 술자리를 가졌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퇴사의 이유를 풀어놓기 시작했는데, 듣다 보니,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녀의 상사이자 내 후배이기도 한 C 대표 때문이었다. C에 대한 그녀의 불만은 그녀를 만날 때마다 들어왔던 터라서 새삼스러울 게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작정하고 인신공격도 불사하는 그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 무얼 할 거냐고 물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그녀가 알아서 할 터였다. 그렇게 한 시간쯤 앉아서 그녀의 넋두리를 들어주다가 그녀의 눈꺼풀이 자주 내려앉는 걸 보고 카카오택시를 불러 태워 보냈다. “집에 도착해 전화할게요” 했으나 전화는 없었다. 아마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대로 곯아떨어졌을 것이다. 나도 전화를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샤워를 하면서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군’ 하고 생각했다. 일기를 쓰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