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은 장맛비에 잠기고 (6-29-토, Heavey rain)
내 오랜 버릇 중 하나가 일기를 몰아 쓰는 것이다. 물론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러니까 사춘기 시절부터 나는 기록하기를 좋아했고 떠오르는 상념을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다. 여학생처럼 대동문구에 들러 종이 질이 좋고 디자인이 예쁜 일기장을 고르는 게 나에게는 작은 즐거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일기 쓰기는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일처럼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는 시간이었으며, 때때로 사춘기적 질풍노도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소중한 계기였다. 하루라도 일기를 쓰지 않으면 양치를 하지 않은 것처럼 찝찝했다.
이런 내가 일기를 몰아 쓰는 습관이 생긴 건 대학 졸업 후, 노동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다. 당시에는 경찰의 압수수색과 불심검문이 흔할 때여서 활동가들은 기록이나 사진을 남기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기록과 사진이 나중에 조직 사건이 터졌을 때 증거 자료로 쓰이거나 다른 동료를 엮어 넣기 위한 자료로 악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결혼한 지 보름 만에 안기부에 끌려가 구속된 90년 후반기부터 92년 초까지는 현장의 상황이 좋지 않아 나도 일기를 집에 남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쓰고 싶은 욕망을 어쩌지 못해 메모지나 담뱃갑 은박지, 성경책 여백에 기억해야 할 일이나 당시 느꼈던 감상을 적어놓곤 했다. 그러다 나중에 상황이 좋아졌을 때 (유화 국면이 시작되었을 때) 그 메모들을 다시 일기장에 옮겨적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당시의 일기는 들쑥날쑥하다.
대학 시절에도 잠시 일기를 쉰 적이 있는데, 그건 1, 2학년 때 문무대 입소와 전방 경계 훈련을 받을 때였다. 당시 대학생들은 1학년 때 문무대, 2학년 때 최전방 GOP 부대에 입소해 각각 일주일씩 훈련받아야 했다. 그건 전두환 정권의 학생 순화 프로그램 중의 하나였는데, 아무튼 그때는 일기장이나 개인 물품을 가져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쉬는 시간마다 그날그날의 일기를 담뱃갑 은박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놓았다가 나중에 퇴소한 후 일기장에 옮겨 적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써오다 보니 두꺼운(300쪽) 일기장으로 열네 권이 되었다. 서너 달 전에 그것들을 스캔해서 PDF 파일로 정리해 두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는 종이 일기장에 일기를 쓰지 않았다. 개인 홈피와 블로그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개인 블로그를 만들고 인터넷상에서 일기를 썼다. 그렇게 써온 일기가 현재 이 블로그의 일기들이다. 하지만 블로그 초기에도 매일 쓰지는 못했다. 당시에는 내가 학원을 운영할 때라서 (낮과 밤이 바뀐 생활과 잦은 술자리 때문에) 시간도 없었고, 나중에 민예총에서 상임이사로 상근할 때는 늦게까지 회의하고 (역시) 술 마시는 일이 잦다 보니 일기 쓰기에 게으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메모해 놓았다가 나중에 일기를 몰아 쓰는 습관이 재발한 건 그때쯤이었다.
생각해 보니 술꾼들은 루틴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밤늦게까지 (어떤 때는 새벽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언제 일기를 쓰겠는가? 그래도 메모하는 습관은 사라지지 않아서 지난 일을 기억해 ‘일기장(블로그)’에 옮기는 일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또 몰아서 쓰는 일이 마냥 나쁜 게 아니다. 당시에는 파악하지 못한 사건의 본질이나 감정의 상태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복기하다 보니 비교적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할 때는 일주일간의 일기를 뒤늦게 몰아 쓸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종일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날이고, 생각보다 무척 고즈넉해지는 날이기도 하며, ‘뒤늦게 옮기는 자’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날이기도 하다.
종일 장맛비 내렸다.
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금도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