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 말고 모두가 분주한 여름 (6-16-일, 맑음)

달빛사랑 2024. 6. 16. 19:42

 

나만 한가하고 모두가 분주하다. 글 쓰는 후배들은 열심히 창작하고 부지런히 시집을 출간하고, 대지의 벌레와 풀과 나무와 하늘을 나는 새들과, 공장의 기계와 거리의 사람들과 하찮은 저 구름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정치 모리배들조차 숨 가쁘게 분주한데 나만 너무도 한가하다. 죄스럽게 한가하고 민망하게 한가하다. 일이 없어 한가한 게 아니라 고민 없어 한가하다. 고민이 없을 리 없는 삶인데 고민하지 않는 건 삶을 대충, 건성건성 사는 것이거나 해결할 수 없는 고민, 이미 질곡이 된 고민이 무서워 회피하는 것이겠지. 그건 명백한 게으름이다. 아니면 질긴 무기력증에 중독되었거나 생각하는 능력을 상실한 것이겠지. 달콤한 유혹은 대가가 크다. 유혹에 빠져 달콤함을 탐닉할 때, 나의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간다. 분주한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 그래서 희한하다. 내 시간이 이렇듯 빠른데 어떻게 한가할 수 있는 거지?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낼수록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지는 법이다'라고 나는 늘 말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도대체 나는 얼마나 비싸게 시간을 소비하는 것인가? 그건 소비가 아니라 허비라고 해야겠지. 의미를 상실한 텅 빈 소비,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강 건너 발생하는 불구경만 하는 일상, 하지만 이것도 인간의 생애라고 할 수 있을까? 본능대로 살아가는 동물조차도 제 생을 위해서는 얼마나 치열한가?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혹시 나만 분주하고 모두가 한가하면, 그건 또 살 만한 풍경일까? 오히려 서글픈 거 아닌가? 복잡하고 어지럽다. 나는 모두가 분주하게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만 분주한 삶은 더욱 싫다. 나의 분주함이 타인의 한가함을 비웃지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분주함이 나의 한가함을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분주함과 한가함은 각자의 삶이 그려내는 풍경이다. 분주할 때도 있고 한가할 때도 있겠지. 멀지 않은 과거만 돌아보더라도 늘 한가하거나 늘 분주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은가? 다만 나는 지금 분주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한가한 것도 아니고. 그런데도 새삼 이 장광설을 푸는 이유는 요즘 부쩍 동료들의 약진 소식이 SNS를 통해 전해지고 있기 때문일 거다. 전해지는 시점과 당시 나의 심리 상태에 따라 그 소식들은 약간씩 다른 성격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분주한 것과 성실한 것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분주한 것이 반드시 부지런한 것도 아니다. 나는 분주하지 않을 뿐이지 불성실하거나 게으른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이건 복잡함을 가장한 무척 교묘한도 앙큼한 자기 합리화다. 모두들 눈치 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