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른했던 여름날 (6-11-화, 맑음)

달빛사랑 2024. 6. 11. 13:40

 

어제 퇴근 무렵 전화한 우 모 선배는 “오늘이 6월 항쟁 기념일인데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겠어?” 했다. 술꾼들이 술 마시기 위해 댈 수 있는 핑계는 백만 가지다. 사실 격조했다. 서로 바빠서 자주 보지 못했다. 자꾸 말을 빙빙 돌리기에 “막걸리나 한잔해요. 구월동으로 넘어와요” 하고 약속을 잡았다. 핑계 김에 본 지 오래된 상훈에게도 연락했다. 직장에서(한겨레신문 계열의 잡지 ‘Economy 21’) 퇴근 중이었다. 훈이 ‘주점 갈매기의 꿈’에는 절대 안 가서, 어쩔 수 없이 옛 ‘경희네’ 근처 막걸릿집에서 1차 하고, 2차도 인천집에서 했다. 심지어 1차 하던 술집에서는 열린 창문을 통해 슈퍼에 가던 종우 형과 눈이 마주쳐, 형이 잠깐 들어와 막걸리 한잔 마시다 가기도 했고, 2차를 위해 인천집으로 가다가는 갈매기 형수와 마주치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내 돈 내고 술 마시는 건데도 갈매기와 관련해서는 이상하게 바람피우다 걸린 듯한 느낌이 든다. 단골이란 한편으로는 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불편하다.❚아무튼 오랜만에 셋이 앉아 6월 항쟁 당시를 회상하며 추억에 젖기도 했고, 서로 다르게 기억하거나 착각하고 있는 사실에 관해서는 검색을 통해 오류를 바로잡기도 했다. 당시 20대 청년들이었던 우리는, 37년이 흘러버린 지금 모두 60대 할아버지들이 되어 시나브로 늙어가고 있다. 여전히 가슴은 뜨겁지만, 이제는 기억력도 희미해지고 눈은 침침하고 머리는 희끗희끗한 중늙은이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시절, 청춘을 바쳐 이루려고 했던 이 땅의 정의와 민주주의는 불행하게도 오늘 현재 심각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옛날을 생각하면 허무해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저 한 줌밖에 안 되는 퇴행 세력들을 위해 그 많은 날의 신산함을 견뎠던 것인가 하는 회의가 든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주의는 고정된 어떤 개념이 아니라 해당 시기의 사회적 성격과 민중의 바람을 품고 매번 새롭게 태어나는, 말 그대로 유기체와 같이 살아 움직이는 속성을 지녔다는 걸 믿기에 우리는 비로소 허무함을 벗어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완성된 어떤 이념이 아니라 완전함을 향해 나가는 전 과정, 이를테면 오류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과 모든 실천 과정까지를 아우르는 말이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아무튼 오랜만에 옛 추억에 젖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이 없다. 전철 타고 귀가한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는다. 많이 취했다.

 

어제의 숙취도 남아 있고, 날도 더워 주로 오전 시간에는 내내 잤다. 에어컨은 더위를 식혀주긴 하지만 몸을 무겁게 했다. 이래저래 종일 나른하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