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을 같은 초여름 (6-4-화, 맑음)

달빛사랑 2024. 6. 4. 23:36

 

 

아침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흡사 가을날의 아침 같았다. 게다가 요 며칠 공기도 좋아 마스크 없이 다닐 수 있어 더욱 좋다. 이 좋은 날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잘 지내고들 있는지 모르겠네.

 

자운 누나는 몸이 안 좋다고 하던데 괜찮아지셨나.

J 시인은 예상보다 강한 폭발력을 지닌 자신의 시가 불러온 후폭풍을 알고 있을까.

유탄에 맞은 허다한 동료들의 상태는 어떤지도 궁금하네.

H는 얼마나 바쁘기에 전화 한 통 없는 거지.

혁재는 잘 지내고 있는 건가?

고교 동창 영만은 아직도 나를 미워하고 있을까?

나 어려울 때 돈을 꿔준 학수 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확장 이전한 동생의 학원은 운영이 어떤지 궁금하군.

지난번 내가 잠잘 때 우리 집에 들렀던 큰누나와 매형은, 방 안에서 TV 소리는 들리는데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 서운했을까? 잠결에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은데, 하지만 난 그때 진짜 자고 있었으니까.

 

바람이 좋아 일부러 지름길을 포기하고 멀리 돌아가는 길만 골라 걷다 보니 잊고 있던 일들이 갑자기 떠올랐다. 문득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주변에 많지만, 또한 나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게 아프게 실감 났다. 세상살이의 이치겠지.

그렇게 걷다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을 보면서는 ‘아, 이렇게 여름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 여름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불고 공기가 깨끗할 때, 괜스레 다른 욕망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

아, 그리고! 사실 오늘 점심에는 칼국수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같은 방에 있는 두 명의 선배가 모두 오전부터 칼국수 노래를 불렀다. 나도 딱히 싫어하는 게 아니라서 그냥 먹었다. 아니 먹어주었다. 막상 먹으니 또 맛있었다. 그래, 세상일은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니지. 가끔은 싫은 것도 해야 하고 좋은 것도 양보할 필요가 있다. 맛있게 먹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이치가 그렇다는 말이다.

 

의뢰받은 수필집 초판을 완성했다. 

카카오 주가가 어제 판 가격보다 400원이나 하락해서 얼른 600주 재구매했다. 꼭 노름 같다. 합법적인 노름. 

내 머리카락은 지금 제멋대로 치솟고 있어. 확실히 컬을 더 심하게 준 이번 파마는 지난번과 다르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