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저물다 ❚ 신경림 시인 작고 (5-22-수, 맑음)
한국작가회로부터 신경림 선생 부고를 받았습니다. 88세, 적지 않은 나이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도 문단의 지인과 후배들을 만나 교류하시던 걸 알기 때문에 다소 갑작스러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선생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시집 『농무』를 통해서였습니다. 80년대 민중시 운동의 선두 주자로서 민중의 애환을 어렵지 않은 시어를 통해 핍진하게 그려낸 해당 시집은 나뿐만 아니라 시를 쓰고자 했던 모든 문학청년의 필독서이자 시 쓰기의 교본과 같은 시집이었습니다.
이후로 연이어 발표한 다양한 시집을 통해 더욱 깊어진 시 세계를 보여주었음은 물론이고 부조리한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투쟁의 현장에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주셨던 분입니다. 앞서 조태일, 이문구, 김지하, 박태순, 채광석 선생들이 먼저 가셨고, 오늘 신경림 선생마저 하늘에 드셨습니다. 선생님의 죽음은 단순히 한 인간의 소멸이 아니라 한국 문학계의 귀중한 자산의 소멸이자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한한 인간에게는 사별의 안타까움이 필연이고 불가항력이겠으나, 그럼에도 선생의 죽음이 내게 무척이나 비통한 이유는 바로 앞서 말한 이유에 더하여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생전 선생과 직접 만나 교류해 본 적은 없으나 선생은 늘 내 시의 스승이었습니다. 선생님 때문에 시 읽기가 행복했습니다. 선생님의 시를 읽으며 미친 세월을 견뎠고, 선생님의 삶과 시를 보며 시 쓰기를 공부했습니다. 이제 슬픔을 추스르며 선생님을 가슴에 담습니다. 시를 통해 이루고자 했던 행복한 세상, 남은 우리가 만들어 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