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조문, 그리고 빈대떡과 우동 (5-9-목, 맑음)

달빛사랑 2024. 5. 9. 15:25

어버이날인 어젯밤(8일)에 있었던 일들을 오늘 옮겨 보며...... 

 

 

 

전날 심형진 선배 모친 빈소에서 조문하고 인성여고 이 모 선생과 차기 교육행정 수장을 마음에 두고 있는 임 모 선생을 만나 함께 식사하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10분 터울을 두고 후배 은준과 아들에게서 동시에 전화가 왔다. 은준의 전화는 용무가 뻔한(술 마시자는) 전화였고 아들의 전화는 ‘어버이날’ 면피용 전화였다. 하지만 둘 다 반갑기는 했다. 은준의 전화는 빈소 떠날 기회를 엿보던 나에게 핑곗거리가 돼주었고, 아들의 전화는 그냥 반가웠다.

 

의무감이든 아니든 자식의 목소리를 반가워하지 않은 아비가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나 역시 은근히 아들의 전화를 기다렸던 터다. 명색이 어버이날인데 자식에게 잊힌 아비처럼 아들로부터 전화 한 통 받지 못하는 것은 슬픈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은 아침 일찍부터 종일 민방위훈련을 받느라고 힘들었다며 느지막이 전화해 죄송하다고 했다. 오전 내내 서운했는데 저녁나절 걸려 온 아들의 전화 한 통에 서운함이 사르르 녹는 걸 보면, 못난 아비지만 아비는 아비인 모양이다. 고맙게도 아들은 전화를 끊으며 “자주 연락할게, 아빠” 했다. 자주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그 말이 참 고마웠다.

 

장례식장 앞에서 은준을 만나 주안역 쪽으로 걸어 내려가며 적당한 술집을 찾았다. 썩 마음에 드는 술집이 없었다. 안주와 분위기 등을 고려하여 적당한 술집을 찾아보려 했으나 마음에 드는 술집이 없어 결국 주안역 앞 옛 한샘학원 골목까지 가서 간신히 빈대떡집을 찾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사람들로 붐볐다. 빈대떡도 수준급, 은준은 연신 “발품 판 보람이 있네요” 하며 만족해했다. 그곳에서 막걸리 두 주전자(각 2병씩 마신 셈)를 마시고 일어났다. 솔직히 나는 그만 마시고 귀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준은 예상대로 2차는 자신이 사겠다며 딱 맥주 한 잔만 더 하자고 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 동네까지 왔는데, (피곤하기도 했고, 다른 동네에서 마시면 취기가 더할 듯해서) 맥줏집 쪽으로 가던 은준은 “형, 혹시 우동 드시고 싶지 않아요? 뜨거운 우동 국물에 소주 한잔 어때요?” 하며 막 개업한 듯한 ‘한신 우동’이란 간판의 식당을 가리켰다. 나 역시 술보다는 우동이 훨씬 당겼다. 하지만 어제 종일 탄수화물을 과다 섭취한 터라 조금 망설였는데, 결국 건강보다는 입맛의 유혹에 굴복했다.

 

 

식당은 개업한 식당답게 깨끗했고 밖에서 보는 것보다 내부는 넓었다. 은준은 ‘한신 우동’이란 브랜드를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우동집의 역사를 죽 풀어냈다. 그의 잡식성 정보는 당할 사람이 없다. 우리는 어묵우동과 소주를 주문해서 먹었다. 우동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고 양도 적지 않았다. 물론 가격은 9천 원, 면 요리치곤 싼값은 아니지만, 아무튼 만족스러웠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을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술이 안 받아 우동만 게걸스럽게 먹었고 소주는 은준이 거의 다 마셨다. 은준은 더 마실 수 있었을 테지만, 내가 피곤해서 그만 일어나자고 했다. 선배가 피곤하다고 선배의 동네까지 따라와 준 게 얼마나 고마운가. 설사 선배에 대한 배려보다 술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려면 어떠하랴.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주당 은준은 혼자서도 서너 병의 소주를 마시는 친구다. 굳이 나와 함께 마시고 싶어한 것은 나와 마시는 자리, 나와 마시는 술이 맛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오늘은 종일 집에 있었다. 빨래하고 청소하고 반찬 만들며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또 친구 모친의 부고를 받았다. 이번 달 조의금만 수십만 원이 나갔다. 사회적 동물로서 사는 일이 참 만만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