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보내며 (4-30-화, 맑음)

4월의 마지막 날, 다른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개운하게 일어난 건 아니고 지난밤 더워서 잠을 설쳤고, 그러다 보니 새벽 일찍 깬 거다. 자다 말고 일어나 에어컨을 켜고 잤다. 4월에 에어컨을 켠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여름에 들어선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공기 질만 좋으면 문 열어놓고 자면 된다. 하지만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짙은 날이 계속되다 보니, 문 열고 자는 게 쉽지 않은 일이 됐다. 이런 이유로 온 집안의 문을 꽁꽁 닫아 놓고 생활하다 보니 자연 환기는 고사하고 더워서 에어컨을 켜느라 전기세가 두 배는 더 나온다. 그래도 일어나서 한 시간 운동하고 출근했다.
오전에는 중학교 친구 김〇수가 기획사와 사회적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박〇화 대표를 소개해 줘서 청사 근처에서 함께 식사했다. 명함을 받고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니 꽤 다양한 일을 하고 있었다. 교육청과 연계할 수 있는 사업도 많다면서 환하게 웃었는데 사업의 내용이나 성격이 꽤 건전하고 공익적이어서(노인 일자리 창출, 퇴직 교사들의 일자리 사업 등등) 만약 가능한 접점이 있다면 관련 부서와 협의해서 소개해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단 제가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그러니 박 대표께서는 인천에 다양한 인맥을 가진 명민한 선배 한 명 만났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이후라도 함께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대표님께 연락할게요” 했다.
퇴근하면서 갈매기에 들렀다. 혁재에게 전화했으나 받질 않았다. 하지만 우연찮게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의 모임이 갈매기에서 있어서 오랜만에 박 전 비서실장을 비롯하여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막걸리 두 잔쯤 마셨을 때 갑자기 얼굴이 불콰해진 혁재가 뭔가에 쫓기듯 서둘러 들어오더니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깜짝 놀랐다. 어딘가에서 술 마시다 화장실 가려고 들른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나를 발견한 혁재는 “어, 왜 혼자 계세요” 하며 맞은편에 앉았다. 눈이 풀렸고 발음도 꼬인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잔을 들고 오더니 막걸리를 한 잔 따라 마시고 나에게도 권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쉘부르’ 카페에 있다고 했다. 내가 소개한 식당에서 낮부터 술 마시다가 방금 2차로 쉘부르에 들른 모양이다.
혁재는 두 잔을 마시고 일어서며 “형, 빨리 쉘부르로 오세요. 병균이가 기다려요” 하며 있던 곳으로 갔다. 나는 잠깐 망설였지만, 가지 않기로 했다. 낮술로 시작된 술자리라면 3명 모두 대취해 있을 게 분명했다. 그나마 술이 센 혁재가 그 정도로 취했다면 나머지 두 명의 상태는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혁재가 나가고 10분쯤 지나서부터 로미가 계속 전화를 걸어 빨리 오라고 재촉했다. 나는 일행들과 있다고 거짓말을 한 후 그 자리에 끝까지 가지 않았다. 선택 장애를 앓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막걸리 2병을 종우 형과 나눠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일찍 귀가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잠깐 쉘부르 쪽을 바라봤다. 오래전 룸펜 생활하던 시절이 잠깐 떠올랐다. 내 주위에는 부럽기도 하고 연민이 들기도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4월의 마지막 밤을 다소 황당하게 보냈다. 집에 돌아와 콩나물과 양배추를 넣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