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수줍음 많은, 4월의 일요일 (4-28-일, 박무와 햇무리)
아침나절 연한 안개가 끼었다. 오후에는 내내 햇무리가 졌다. 맑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 오기 전처럼 마음을 들뜨게 할 만큼 흐리지도 않았다. 수줍음이 많은 나처럼 해는 차광막 뒤에서 실루엣만 드러낸 채 종일 분주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하고, 밥은 거른 채 방 정리를 했다. 매트 방향을 바꾸고 커버를 다시 씌웠다. 가끔 아랫집에서 돌보는(키우는 건 아니고 찾아올 때마다 먹이와 물을 주는) 고양이 우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10시 30분쯤 이른 점심을 준비했다. 가지를 꺼내 볶았고, 부추와 달걀을 넣고 국을 끓였다. 오래전 환경운동연합 심(沈) 모 선배가 준 덕적도 김을 꺼내 먹기 좋게 잘랐다. 약간 눅눅해지긴 했지만 먹을 만했다. 오이와 양배추, 호두와 양파, 브로콜리를 한 그릇에 넣고 그 위에 발사믹 소스를 뿌려 샐러드를 만들었다. 11시 10분쯤 만든 식탁에 앉아 유튜브를 시청하며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먹었다. 평화로웠다.
오후에는 대체로 잠을 자거나 책을 읽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인터넷에서 관련 정보를 찾았다. 당연히 각각의 정보는 꼬리를 물기 일쑤여서 결국에는 책을 놓고 PC 앞에 앉은 채 오후를 보냈다. 그러다 졸리면 낮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서 실내 자전거를 30분간 탔고 5시 30분쯤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에는 참치와 두부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지난번 김치통을 비울 때 따로 모아두었던 김칫국물을 넣으니 얼큰하고 맛있었다. 달걀 2개를 작은 밥그릇에 풀고, 파와 양파를 작게 썰어 넣고,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전자레인지로 1분 30초간 데워 달걀찜을 만들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었다. 끼니때마다 직접 음식을 만들고 홀로 식탁에 앉아 밥 먹는 일은, 나에게는 행복한 시간이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평온한 시간...... 4월은 수많은 사연을 품고 있지만, 구구절절 풀어놓지 못하고 안으로 우는, 꼭 나 닮은 계절이다. 그런 4월을 닮은 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