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요, 괜찮아요 (1-17-수, 눈과 비)
오전부터 생각보다 많은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눈으로 시작했지만 이내 비로 바뀌어 내렸다. 기온이 높아 계단에 쌓인 눈과 빗물은 얼어붙지 않았다. 앞서 내린 눈은 이미 슬러시처럼 살얼음이 되어 있었지만 점차 빗물에 쓸려 내려갔다. 기온이 낮았다면 도로는 빙판으로 변했을 게 틀림없다. 겨울비는 겨울 나목과 건물의 외벽, 도로와 민가의 지붕을 적시며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듯 내렸다.❚
라면 물을 올리고 테라스 문을 열자 빗물이 몇 방울 발 앞에 떨어졌으나 주방 안까지 들어오진 않았다. 비 오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빗물은 나에게도 '괜찮다, 괜찮다' 속삭이는 것 같았다. 무엇이 괜찮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모든 것이 괜찮으면 좋은 것이겠지. 라면에 계란과 버섯, 양파와 마늘, 대파를 넣고 익기를 기다릴 때 택배가 도착했다. 인천인권영화제에서 후원자들에게 보낸 키링과 팸플릿들. 은색의 키링이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우리 사회의 인권 또한 빛을 받아 반짝이던 은색 키링처럼 그렇게 빛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형편이 된다면 내년에는 좀 더 많은 후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점심에는 부추 떡국을 끓여 먹었다. 누나가 가져다준 떡국 큰 한 봉지를 얼추 다 먹었다. 냉동실에서 남은 떡국을 꺼내 물에 담근 후 냉장실에 옮겨놓았다. 식탁에 앉아 주식 현황을 확인했는데, 두 종류의 주식에서 발생한 수익은 마이너스 160만 원, 최근 가장 큰 손해가 발생한 것 같다. 지난주에는 170만 원의 이익을 보기도 했으니 플러스 마이너스 상쇄하면 큰 변동은 없는 상태다. 그래도 서너 달 전까지만 해도 손실이 전체 투자금액의 30%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많이 회복해서 16%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
저녁에는 누나가 사다놓은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찌개를 끓였다. 지난겨울에 얻은 김치들이 푹 익어서 찌개를 끓이니 제대로 맛이 났다. 다만 누나는 나처럼 비계가 섞인 찌개용 돼지고기를 사 오는 게 아니라 매번 퍽퍽한 목살을 사 온다. 물론 건강에는 비계가 좋지 않지만,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래도 찌개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면 기본 맛은 하는 법.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생과일과 채소를 거의 먹지 않았다. 게다가 밤에는 아이스크림까지 먹었으니, 이거야 원. 단맛의 중독성은 정말 상상을 초월한다. 단맛은 내 뇌를 지배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잠시 저항해서 그 지배력을 한동안 줄여놨는데, 최근 다시 내 몸에 대한 단맛의 지배력이 강화되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일단 일주일에 한 번만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타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