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갈매기에서 혁재를 보았다. 만석동에서 잘 생각이던 혁재는 “그럼, 오늘은 집에서 자야겠네요” 했다. 얼마 전 얻은 작업실에서 자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난방시설도 없는 걸로 아는데 밤에 춥진 않은 걸까.
내가 먼저 도착해 텅 빈 술집에서 혁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인천집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D아트 Y가 지친 표정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는 약간 피곤해 보였다. 일행이 있는지 나와 합석하지 않고 옆자리에 앉아 따로 안주를 주문했다. 잠시 후 obs 승철 형과 종주단의 동렬 형이 들어왔다. 그들끼리도 오랜만에 만나는 모양이었다. 내가 주문한 아귀찜이 막 나왔을 때 혁재가 도착했다. 얼굴은 다행히 좋아 보였다.
잠시 혁재에게 주변 지인들의 안부를 묻고 있을 때, 갑자기 옆자리 Y의 언성이 높아졌다. 얼핏 듣기로는 후배 S의 재단 퇴사 소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Y가 먼저 "문화계 기자로 오래 일한 사람(승철 형)이 어떻게 그 소식(S의 사표 소식)을 모를 수 있어요?"라며 승철 형을 타박했고, 그 말을 들은 승철 형 역시 욱해서 “아니 그럼 내가 모든 소식을 다 알고 있어야 해?”라며 욕설 섞인 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Y가 다시 “아니, 왜 욕을 하고 난리예요?”라며 더 큰소리로 흥분했고, 말리던 동렬 형에게는 “왜 잘못이 나에게 있는 것처럼 말씀하세요?”라며 형까지 타박했다.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두 선배는 Y의 서슬에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화낼 일은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 '이 친구가 오늘 스트레스받은 일이 많았던 모양이군' 생각했다.
전적으로 Y가 과잉 반응을 보였다는 게 내 생각이었지만 나와 혁재는 불똥이 우리에게까지 튀어 괜스레 불편한 일이 생기는 게 귀찮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그나저나 Y 본인 역시 때때로 S를 비난하곤 했던 터라서, 나는 그녀가 S의 퇴사에 대해 그렇듯 엄마가 아들 걱정하듯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인 게 무척 뜨악했다. 하긴 이렇듯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행동이나 급발진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잠깐 담배 피우러 나갔다 오더니 그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깔깔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도 웃었다.
소주 두 병을 마시고 다시 만석동으로 가야겠다는 혁재와 전철역까지 걸어와서 헤어졌다. 그는 환승을 위해 주안 방향의 전철을 탔고, 나는 만수역 방향의 전철을 탔다. 혁재에게 확인한 바로는, 다행이 나의 '당신' 중 한 명은 무탈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머지 '당신'들의 안부는 혁재도 잘 모르고 있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길 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