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치과 진료 ❚ 종일 비 (11-16-목, rainny day)

달빛사랑 2023. 11. 16. 22:21

 

 

종일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예보에 의하면 이 비가 그친 후 추위는 점령군처럼 이곳에 찾아들 거라고 하더군요. 잠깐 머뭇거리는 듯하다가 늦가을이 틈을 보이면 서슴없이 뒷덜미를 낚아채며 빠른 보폭으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안으로 성큼 차가운 발을 들이미는 천연덕스러움이라니, 겨울의 성정은 한결같습니다.

 

점심때 치과에 들러 레이저치료와 스케일링을 받았어요. 오늘은 잇몸뼈 상태를 보고 원장이 크게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원하던 모습을 볼 수 있네요.”라며 “다음 주에는 이제 본격적으로 본을 뜨고 아랫니부터 작업 들어가야겠어요” 하더군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임플란트 시작한 지 정확히 3개월 만입니다. 

 

치료를 마치고 청사 앞 뼈해장국 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못 보던 집이었습니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습니다. 이전 가게의 이름이 적힌 간판 위로 새로운 식당 이름을 덧붙였는데 길 건너에서 보니 희미하게 전(前) 가게의 상호가 비치더군요. 음식은 약간 짜긴 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서 부어 먹으니 먹을 만했습니다.

 

계산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삼성페이로 했는데, 사장과 직원들은 아직 모바일 결제가 익숙하지 않았는지 전화기를 내밀자 무척 당황하더군요. 그래도 어찌어찌 계산은 했습니다. 하지만 사무실에 들어올 때까지도 휴대전화에 결제 알림 정보가 뜨질 않더군요. 정상적으로 결제가 되었다면 “삑” 하는 알람 소리와 함께 부르르 진동도 느껴지게 설정해 놨거든요. 한 손에 우산을 들고 있어서 거리에서는 휴대전화를 자세히 살펴볼 수도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들어와 결제 정보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결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더군요. 어쩔 수 없이 빗속을 걸어 다시 가게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나올 때 가져온 실물 카드로 계산했습니다. “고마워요. 일부러 비 오는데 다시 와서 이렇게……” 말끝을 흐렸으나 사장과 직원은 내심 감동하는 눈치였습니다. 당연히 할 일은 한 건데도 왠지 모르게 뿌듯했습니다.

 

오후에는 비서실에서 의뢰한 다음 주 전국 시도 교육감협의회 때 할 교육감의 인사말을 서둘러 작성해 주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비 내리는 도시의 모습을 한참 동안 지켜봤습니다. 낮술 마시기 딱 좋은 날씨였습니다. 옛날 같으면 분명 누군가에게 전화했을 테지만 오늘은 꾹 참았습니다.

 

5시쯤 사무실을 나왔는데, 정거장으로 이동하면서 혁재에게 전화해 안부를 물었습니다. 그는 할아버지 제사 준비 때문에 신기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더군요. 오늘이 그의 생일이었다는 건 전혀 몰랐습니다. 지난달에 말했던 작업 공간(말이 작업 공간이지 사실은 술 마실 공간)을 마침내 얻었다는군요. 내일 잔금 치르고, 18일부터 들어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추진력 하나는 최고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 제사만 아니었다면 잠깐 만나서 소주 한잔하자고 했을 텐데, 다행입니다. 나의 욕망을 현실적 상황이 제어해 준 셈입니다.

 

저녁 먹고 운동하고 있을 때 후배 운준의 전화가 왔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했지만, 그는 분명 내가 혁재에게 전화한 것과 똑같은 이유로 내게 전화했을 겁니다. 30~40분 정도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그래, 이제 쉬어라”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사실 전화 받은 김에 “은준아, 우리 동네로 와라. 맥주나 한잔하자”라고 할 뻔했습니다. 담배 끊을 때는 금단 현상이 없었는데, 술은 왜 이렇게 매 순간 당기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