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立秋)ㅣ혈액검사 (8-8-화, 맑음)
절기상 입추, 하지만 현실은 37도까지 치솟은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늦여름이다. 오늘은 혈액검사가 있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 물도 마시지 않고 공복 상태를 유지했다. 다만 공복 혈당은 확인했다. 96,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여서 안심했다.
병원 개원 시간 9시에 정확하게 맞춰서 내원했지만, 이미 서너 명의 나이 든 환자들이 앉아 있었다. 약 10분 정도 대기하다가 의사를 만났고 주사실에 들어가 혈액을 채취했다. 그리고 집에 들르지 않고 곧바로 직장으로 갔다. 오늘은 전 비서실장 박과 점심 약속이 있었다. 청사에 도착하니 9시 40분, 2시간가량 근무하다가 11시 30, 교육청 정문 앞에서 박을 만났다. 보운 형과 함께 박의 차를 타고 문학동에 있는 순두부 맛집으로 이동했다. 언젠가 나도 와본 적이 있는 집이었다. 감님도 식사하러 자주 들른다고 했다. 주인도 박을 아는 체했다. 박 역시 비서실장 시절에 교육감과 함께 자주 들렀다고 한다.
주메뉴로 나온 음식은 돼지고기 수육과 두부, 비지와 잣죽, 된장찌개 등이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혈당 생각 안 하고 배불리 먹었다. 다만 남긴 건 흰쌀밥 반 공기. 고기와 두부, 나온 반찬들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굳이 흰쌀밥까지 한 공기를 다 먹을 필요는 없었다. 음식은 상당히 정갈하고 맛있었다. 맛집으로 소문날 만했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커피집으로 이동해 아메리카노도 한 잔 마셨다. 박은 청을 나간 뒤 건강도 무척 좋아졌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혈색과 표정이 확실히 좋아졌다. 일단 스트레스가 없으니 건강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고 잊고 있던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먼지 앉은 채 방치되었던 오래된 태광 오디오를 수리해 턴테이블로 음악을 듣고 있다고 한다. 엊그제는 아내와 함께 송림초등학교 근처 엘피 가게에 들러 20만 원어치 올드팝 레코드판을 구했다며 아이처럼 웃었다. 보기 좋았다. 단양에 있는 집도 팔려고 내놨다고 한다. 아예 고향 홍성, 친지와 가족들 곁으로 가려는 모양이었다. 카페에서 여고생들처럼 수다 떨다가 1시 40쯤 사무실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혈당을 체크했는데, 다행히 정상 수치를 벗어나진 않았다.
퇴근하면서 단골 미용실에 들렀는데, 오늘도 문이 닫혀있었다. 휴일이 아닌 날 문을 닫으면 항상 문 닫은 이유를 메모지 적어 붙여놓았었는데, 이번에는 메모지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집 바로 옆에 있는,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깎았다. 젊은 미용사였는데 성격이 시원시원했다. 깎은 머리도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자주 들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는 한편 속으로는 소심한 A형답게 ‘그나저나 내일부터 단골 미용실 앞을 어떻게 지나다니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단골 미용실은 만수역 2번 출구를 나와 BYC 건물을 지나면 바로 길가에 있어 출퇴근 시간에 항상 그 집 앞을 지나가게 된다. 애인 있는 사람이 바람 피운 것 같은 묘한 느낌이었다. 나 원 참!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 내일과 모레가 고비라고 하는데, 이번 태풍이 고약한 것은 이 태풍이 한반도를 정확하게 관통할 것 같기 때문이다. 지난달에도 집중호우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아직도 복구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다시 또 중급 태풍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교육청에서도 만일의 사태에 철저하게 대비하라고 계속 방송과 문자를 통해 강조하는 중이다. 별일 없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