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끝이 보인다는 건 매우 큰 축복이지 (6-27-화, 맑음)

달빛사랑 2023. 6. 27. 20:32

 

장마 기간이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화요일이었다. 간헐적 단식 이틀째, 공복 상태인 오전에 잠깐 허기가 느껴졌지만, 참을 만했다. 점심은 보운 형과 돼지국밥을 먹었다. 엊저녁 식사하고 17시간 만에 먹는 음식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국물까지 모두 마셔버렸다. 청사로 돌아올 때는 산책 삼아 일부러 시청 쪽으로 에둘러 왔다. 맑은 날이었지만 구름이 끼었고, 볕이 뜨겁지 않았다.❚오후에 은준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동네에서 유 모 박사, 장 모 화백 등과 만나기로 했다며 나도 함께 보자고 했다. 은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딱 잘라 거절했다. 나중에는 “그럼 술 마시지 마시고 나오셔서 식사라도 함께하시죠” 했지만, 그것조차도 사양했다. 그러자 그는 “단호하시네요.” 했다. 그런 나의 단호함에 그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어제와 오늘 홈쇼핑으로 마늘, 양파, 브로콜리 등속을 구매했다. 달고 짠 음식들의 빈자리를 메꿔줄 채소들이다. 생으로 먹되 그냥 먹으면 너무 밋밋할까 봐 찍어 먹을 소스를 만들기 위한 고추냉이와 몇몇 양념들도 함께 구매했다. 원하는 모든 정보를 주는 유튜브를 통해 제조법을 익혔다. 본래 유튜브는 자칭 고수들이 넘쳐나는 곳이다. 제대로 된 정보를 변별하는 일이 쉽지 않지만, 비판적 거리를 두고 정보를 접하다 보면 수용할 것과 버릴 것이 자연스럽게 변별된다.❚조금 일찍 퇴근해서 일단 사이클 한 시간을 타고, 새로 산 식탁보로 식탁을 덮었다. 짙은 회색의 식탁보가 보기 좋았다. 배송된 양파와 마늘을 깨끗하게 정리한 후 (양파의 경우) 신문지로 싸서 냉장고에 넣었다. 이래야 양파나 마늘이 물러지지 않고, 또 오래 먹을 수 있다. 물론 유튜브에서 얻은 정보다. 저녁 반찬은 계란찜, 상추 무침, 김치, 양파, 마늘, 김, 미역국 등이었고 밥은 여러 잡곡과 콩을 넣은 잡곡밥이었다. 식사 후 다시 또 한 시간쯤 텔레비전 보면서 자전거를 탔다.❚11시도 안 됐는데 졸리다. 지금 자면 새벽에 깰 텐데, 어쩌지.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개미지옥 같은 지긋지긋한 삶의 질곡을 어떻게 빠져나왔나 하는 생각 말이야. 그때는 정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그 자체였지. 친구도 잃고 사랑도 잃고 심지어 아이의 신뢰마저 잃어버렸던 그때, 그래도 나를 위해 기도하던 엄마가 있었지. ‘내가 한 잘못도 아닌데 도대체 왜 내가 이런 상처와 모멸을 견뎌야 하는 거지?’ 하는 분노와 슬픔이 버무려진 감정이 시도 없이 나를 괴롭힐 때였지.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았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조금씩 조금씩 칠흑 같던 내 일상 저 너머로부터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그건 나의 노력과는 무관한 빛이었지. 신의 배려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빛이었어. 엄마의 기도가 상달된 걸까. ‘여호와 이레’, 말로만 듣던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절망에 빠지지 말라며 엄마가 들려주던 이야기, 그 어떤 상황에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고 또 나를 위해 모든 걸 예비해 놓으신다는 그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 거야. 물론 지금도 나는 신의 배려를 확실히 믿고 있지. 엄마의 삶과 엄마의 죽음이 보여준 치열함과 신실함, 믿을 수 없는 거룩함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 그러니 너도 힘내. 끝이 보인다는 건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그건 매우 큰 축복이지. 힘들 때마다 생각하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