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때 명가수였다고 (06-16-금, 맑음)
노래를 안 부른 지 오래되었습니다.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졌다는 게 정확한 말이겠네요. 옛날에는 술만 마시면 노래했는데, 요즘에는 술꾼들이 너무 점잖아졌어요. 술 마시는 자리와 노래하는 자리가 별개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아무튼 90년대까지는 대학가 술집이나 식당에서는 항상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동료들은 서로의 18번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희한한 것은 술 마실 때마다 사람들은 매번 자신의 18번은 물론 상대의 18번을 부르고 들었던 것인데, 그것에 대해 전혀 지루해하거나 짜증스러워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상대의 18번을 따라 부르기까지 했으니, 생각해 보면 참 인간적인 시대였습니다. 아무튼 그 시대를 경유하는 동안 나도 제법 술자리 가수였습니다. 음정 박자 정확하고 목소리도 좋아서 많은 사람이 앙코르를 외쳤다니까요.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목청이 제대로 나오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보철 때문에 발음도 나빠졌고, 무엇보다 노래 부를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실력이 준 거지요. 노래는 정말 자주 부를수록 실력이 늘거든요. 특히 노래방 가는 걸 매우 싫어하다 보니 노래 부를 기회가 더욱 없었던 거지요. 이제는 고음도 잘 안 올라갑니다. 그러니 가수 혁재의 매니저로 만족할 수밖에요. 언제라야 다시 신나게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올까요. 그 사람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오긴 올까요?❙‘봄날은 간다’, ‘보고 싶은 여인아’, ‘희망가’, ‘황성옛터’ 등이 18번입니다. 오래전에는 주로 민중가요를 불렀는데 이제는 집회가 아닌 자리에서 그런 노래를 부르기가 다소 민망합니다. 지난 시절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지금까지도 더듬거리는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