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마음의 폭풍이 지나간 후 (06-11-일, 새벽에 비, 맑음)

달빛사랑 2023. 6. 11. 17:27

 

요 며칠 정신이 없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들, 물론 일어날 가능성이 0%는 아니지만 범인의 감정으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일들이 연거푸 일어났다. 최근 더욱 히키코모리가 되어 가고 있는 나에게 그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엊그제 함께 술을 마셨던 선배가 지극히 비현실적으로 죽음을 맞았고, 가장 친했던 직장 동료는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두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흔적이 지워지는 느낌을 받거나, 나만 모르는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고, 이너(Inner) 서클(circle)의 몇몇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는 나를 의식적으로 배재하고 있다는 느낌이 시도 때도 없이 밀려들었다. 물론 이런 느낌은 두렵다기보다는 서글프다.▮재미있는 일이라곤 가끔 혁재, 미경이와 술 마시는 일, 혼자 영화를 보거나 청소하는 일, 집에 콕 틀어박혀 유튜브나 동영상을 시청하는 일, H의 전화를 받거나 함께 밥 먹고 술 마시는 일뿐이다.▮어제 늦은 밤부터 오늘 새벽까지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소낙비가 내렸다. 빗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드는 일은 고마운 일이다. 잠들기 전에도 좋았고 잠결에도 좋았다. 시원했다. 그간의 고민거리가 빗물에 씻기는 느낌이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늦게서야 간신히 잠들었는데도 오늘 아침 일찍 잠에서 깬 건 엄마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집으로 돌아가는 길, 올이 성긴 천으로 뒤덮인 정차된 차 안에서, 엄마는 손자들과  대화하고 있었다. 천 사이로 새어 나온 불빛 때문에 가다 말고 그 천을 들어 올렸던 것인데, 그 순간 나를 꼭 닮은 엄마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너무 반가워 목이 메었다. “엄마, 여기서 뭐 하세요” 물었을 때 엄마는 대답은 하지 않고 쓸쓸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꿈이 깼다. 꿈 속의 풀 많은 길과 모퉁이 집, 그 아래 마당 넓은 집은 모두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였다.▮잠에서 깬 후 한참 동안 멍하니 누워 있었다. 왠지 모를 먹먹함이 가슴을 콕콕 찔러댔지만, 그래도 한동안 나를 괴롭히던 복잡한 생각과 일상의 권태로움은 빗물과 함께 흘러가 버렸는지 울고 난 뒤의 마음처럼 한결 개운하고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아침 일찍 H로부터 문자가 도착했다. 한동안 바빠서 연락 못 했는데...... 조만간 만나서 안부를 들어야겠다.▮오늘은 강 선배의 발인 날이다. 수홍 형을 비롯한 동기들은 장지까지 동행했을 것이다. 이제 세상의 모든 짐 내려놓고 고통과 슬픔 없는 그곳에서 영원히 안식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