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쓸쓸한 중년을 위하여! (04-17-월, 맑음)

달빛사랑 2023. 4. 17. 20:21

 

지난주에 진행한 각종 검사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비서실장과 함께 길병원을 찾았다. VIP 대기실에 들러 접수한 후, 나와 보운 형은 대기실에 있고 비서실장은 담당 의사를 만나러 갔다가 30분쯤 후에 돌아왔다. 그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 불안한 마음이 엄습했다. 아니나 다를까, MRI 검사 결과 경증 뇌경색이 확인되어서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에 올 때만 해도 뇌의 문제가 아니라 전정기관 문제라고 생각해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내원했는데, 갑자기 입원하라고 하니 박은 무척 당황했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머리도 지끈지끈 아팠다. 정말 박에게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기관지염으로 인하대병원에 입원해 있던 손자는 상태가 호전돼 오늘 퇴원했다고 한다. “에고, 이 소식을 들으면 집사람은 분명 (비서실장을) 당장 그만두라고 성화해 댈 텐데……” 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타적인 삶을 사는 남편 때문에 피곤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서실장으로 들어올 때도 그의 아내는 무척 반대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교사로 정년퇴직하면 훨씬 여유롭고, 또한 방학 때는 시간이 많이 남아 여행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월급도 대폭 깎인 채 일도 많고 구설도 많으며 스트레스도 많은 비서실장으로 오겠다고 했으니 어느 아내가 좋아했겠는가. 그는 동지이자 벗인 현 교육감을 도와 인천 교육을 제대로 살려보고 싶다는 신념 하나 때문에 ‘그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본 나는 그것을 잘 안다.

 

풀죽은 그를 위로하며 청까지 걸어오는데,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점점 병원 찾을 일이 많아질 나이다. 게다가 나는 혼자 사는 사람, 아프면 서러운 걸 넘어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볕 좋은 봄날, 이런 쓸쓸한 생각을 하는 내가 가여웠다. 건강을 스스로 챙기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일, “망할 먼지!” 하면서 주머니 속에 넣어두었던 마스크를 슬며시 꺼내 썼다. 무엇보다 건강을 위해선 각종 유혹을 이겨내야 하는데, 음식의 유혹 앞에서 나는 너무 쉽게 굴복한다. 그나마 담배를 끊은 건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지만, (글쟁이가 담배를 끊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속설이 있음) 어젯밤에도 결국 단 것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투게더 아이스크림 반 통을 먹었다. 아침에는 해장을 위해 라면까지! 이러니 러닝머신 위에서 암만 걷고 달린다 해도 건강이 좋아질 리 만무하지. 하지만 한편으로 ‘내가 무슨 수양산 숨어 살며 고사리로 연명하던 백이, 숙제도 아니고, 매일 간 덜 된 음식이나 푸성귀만 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반성하는 마음보다 서글픔이 컸다. 혈압과 고지혈을 관리하려면 짠 음식과 단(甘) 음식, 이를테면 어려운 시절, 여러 사람 목숨 구한 라면이나 천당의 맛을 지닌 아이스크림, 기름진 음식은 절대 입에 대서는 안 된다고 하니, 도무지 살맛이 안 난다. 라면 먹고 달려서 금메달 딴 임춘애 선수도 있는데 말이지. 아무튼 마음이 심란하다. 아이스크림과 라면, 냉면과 소주를 등지고 사는 삶은 얼마나 맛없는 삶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