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벚꽃축제 (04-08-토, 맑음)

달빛사랑 2023. 4. 8. 20:57

 

 

오전 내내 뒹굴뒹굴하다 점심 먹고 벚꽃 보러 대공원에 갔어요. 솔직하게 말하면 오늘 축제 현장에 감(監)이 참석한다고 해서 들러 본 겁니다. 멀지도 않잖아요. 집에서 걸어가도 될 거리고, 전철 타면 두 정거장이니 부담도 없어요. 또 하나, 꽃이 다 지기 전에 정말로 ‘꽃구경’ 한번 해보고 싶었고요. 마실 물 한 병 사서 가방에 넣고 혁재와 은준에게도 시간 되면 대공원에 꽃구경하러 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혁재는 반응이 없었고 은준이만 ‘지인 출판기념회에 왔어요. 끝나면 연락할게요’라고 답장이 왔습니다.

대공원에는 정말 사람이 많더군요. 꽃구경 나온 인파로 산책로는 무척 붐볐어요. 젊은 연인들도 무척 많았는데, 특히 그들에게 눈길이 많이 가더군요. 벤치에 앉아 꽁냥꽁냥하는 연인들을 바라보며 그들의 자리에 나를 대입해 보기도 했습니다. 3대가 함께 꽃구경 온 가족도 많았어요. 다리가 불편한 노인(엄마 혹은 할머니)을 휠체어에 태우고 산책하는 가족도 눈에 띄었습니다. 엄마가 생각나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와 자주 이곳에 오지 못한 게 후회되더군요. 사실 엄마는 그 어떤 아름다운 꽃보다 나와 길을 걷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하셨을 텐데 말이지요. 하늘에 들기 1년 전쯤 이곳을 찾았을 때 내 손을 잡고 걷는 걸 너무 좋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생각나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눈처럼 우수수 떨어지던 꽃들, 장관이었습니다. 손을 벌려 떨어지는 꽃잎을 잡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더군요. 하지만 어느 순간 공원의 날씨가 춥게 느껴졌습니다. 공원이 산 아래에 있어서 그런지 겉옷을 걸쳤는데도 나는 춥더군요. 무척 땀이 많은 내가 전혀 땀을 흘리지 않았다니까요.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사실 허리가 아파 오래 걸을 수 없어서 자주 벤치에 앉아 쉬다 걷다 했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그곳에서는 어린이를 상대로 소방훈련을 비롯한 다양한 참여 행사가 진행되고 있더군요. 여기저기 구경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너무 춥고 힘들어서 결국 행사 시작 두 시간 전인 4시쯤 다시 전철역으로 내려왔습니다. 올 때처럼 갈 때도 전철역은 인산인해였습니다. 나야 뭐 두 정거장만 타고 오면 집이라서 인파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습니다만, 왜 그런지 모르게 오늘은 정말 피곤했어요. 전철 안에서 혁재와 은준이에게 “공원에서 나와 귀가 중” 문자를 보냈습니다.

집에 도착해 씻는 것도 잊은 채 축 늘어져 소파에 한참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허기가 느껴지더군요. 서둘러 샤워를 마친 후 슈퍼에 가서 돼지고기 한 근과 두부 2모를 사 와서 찌개를 끓였습니다. 5시쯤 은준이가 막걸리 한잔하자고 전화했지만, 이미 귀가해 샤워까지 마친 상태라서 정중하게 사양했습니다.

완성된 김치찌개를 반찬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컨디션이 조금 좋아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할 때쯤 다시 은준이의 전화가 왔어요. 집에 돌아와 혼자 술 한잔하고 있는데, 선물로 받은 홍어무침과 귀가할 때 사온 멍게가 너무 맛있어 내 생각이 났다는군요. 그러면서 “형, 도저히 못 나오세요? 안주가 너무 좋은데……” 하며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잠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홍어와 멍게,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안주거든요. 하지만 꾹 참고 “나 밥 먹었어. 배도 부르고. 미안해. 다음에 먹자” 하고 간신히 전화를 끊었습니다.

은준이와의 통화를 끝내고 나니 이번에는 혁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동화마을에 있다고 하더군요. 자유공원에서도 모종의 축제가 있었는지 그곳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주최측이 행사 현장에서 마구잡이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바람에 현장 분위기가 난장판이 됐다며 짜증을 내더군요. 인천대공원 벚꽃축제 현장에서는 장사(특히 술장사)를 엄격히 제안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아이들이 현장에 무척 많았거든요. 술꾼인 나에게는 무척 아쉽긴 했지만, 그건 정말 잘한 일입니다. 아무튼 제대로 즐기지는 못했지만, 벚꽃축제 현장을 다녀오긴 했습니다. 그야말로 대공원 벚나무들에게 눈도장만 찍고 온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