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의 작은 섬에서 스스로 고립되기 (02-26-일, 맑음)

달빛사랑 2023. 2. 26. 20:27

 

오랜만에 후배에게 전화를 받았다. 이것저것 안부를 묻던 후배는 "아무래도 아버지는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라고 말했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도 태연해서 놀랐다. 의무와 부담감의 경계에서 그의 고민은 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대문 밖으로 나가지 않았고 다만 대문 밖에서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왔을 뿐이다. 자신을 통장이라고 밝힌 그녀는 주민등록지 실제 거주 인원 확인 중이라며 "문계봉 씨 맞지요?" 하고 물었고 내가 그렇다고 하자 들고 온 서류에 뭔가를 적었다. 그리고 황사 마스크 하나를 주고 돌아갔다. 오늘 하루 '나의 섬'에 들어온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가 돌아가고 현관문이 닫히며 디지털 도어록의 음성 메시지 '문이 닫혔습니다'가 안과 밖의 경계를 완강하게 구분해 주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AI는 '문이 열렸습니다'에서 불안해하다가 '문이 닫혔습니다'에서 안심하는 것 같았다. 한때는 고립이 두려워 어울리지 않는 옷도 자주 입었고 섞일 수 없는 사람들 속에도 스며들려고 애를 썼다. 그 스며듦을 위한 치열함은 내 진짜 삶의 치열함과는 별로 상관없었다. 물론 이제 난 더는 내 옷이 아닌 옷을 입지 않을 것이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더는 관심과 사랑을 앵벌이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섬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한량없이 자유롭다. 의도적인 고립이 왜 아름다운 선택인가는 본인만 알 수 있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하는 건 위험한 징후라고 누군가 말했지만, 그 위험함조차 사실은 온전히 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