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후배, 신기시장 (01-20-금, 맑음)
오래전, 비서실장(김치를 종류별로 다양하게 포장해서 아이스박스에 넣어주었다)과 대변인(직접 농사지은 배추로 담은 김치였다)에게 받아 탕비실 냉장고에 넣어놨던 김치들을 오늘 가져왔다. 명절 선물로 받은 조미 김 세트도 잊지 않고 챙겼다. 매번 명절 때마다 내가 선택하는 품목이다. 멸치와 쌀, 햄 세트 등도 있지만 혼자 사는 나에게는 조미김이 가장 유용하고 가성비가 높다. 나중에 알았지만 단가도 제일 비쌌다. 어쨌든 김치와 김 박스 등 부피 큰 짐을 혼자 나를 수가 없어서 후배 근직이에게 부탁했더니 착한 후배 근직이는 선뜻 차를 몰고 교육청까지 와주었다. 집에 들러 김치를 내려놓고 점심 먹으러 가면서 혁재에게 연락했다. 마침 신기시장에서 장을 보고 있었다. 신기사장 '이쁜네' 앞에서 혁재를 만나 시장 안 혁재의 단골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돼지고기볶음과 청국장을 먹었다.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들도 모두 맛있었다. 근직이도 혁재도 너무 만족스러워했다. 밥을 제대로 안 먹는 혁재도 청국장에 밥을 비벼 반찬으로 나온 물미역, 매실장아찌, 참게장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혁재는 요즘 몸무게가 61kg밖에 안 나간다고 했다. 본인도 걱정이 되는지 앞으로 5kg은 더 찌우겠다고 말하긴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을 거라는 걸 나는 안다. 너무 말랐다. 걱정이다. 주름진 얼굴에 큰 눈만 강조되어 보이는 혁재의 얼굴은 꼭 만화 캐릭터처럼 변해 버렸다. 동화마을에서 장사를 시작한 후 안주를 만들며 간간이 안주를 집어먹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식사를 마친 후, 근직이와 혁재는 나와 헤어져, 잠깐 혁재 집에 들러 명절 장 본 걸 내려놓은 후 함께 동화마을로 이동했고, 나는 36번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김치를 종류별로 김치 통에 덜어 놓고, 대변인의 김치통은 깨끗이 닦아서 말려놓았다. 저녁 먹고 영화를 보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고즈넉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고향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들이 고향에서 만나게 될 이 밤도 한결같이 편안했으면 좋겠다.

주여, 바라옵건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라인홀트 니부어, '평온을 비는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