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금연 3일째 (01-12-목, 흐리고 늦은 밤 비)

달빛사랑 2023. 1. 12. 15:24

 

열흘 만에 운동하러 갔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개인사물함에 있던 욕실 용품들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사정을 들은 트레이너는 나를 재활용품 수거함쪽으로 데려가더니 "이거 아닌가요?" 하며 플라스틱 바구니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습니다. 제것이었습니다. "아, 맞아요. 내 거예요. 근데 이게 왜 여기 와 있지?" 하며 바구니를 살펴보니, 이미 안에 있던 샴푸, 면도크림, 로션, 비누, 샤워타월 등은 사라지고 질레트 면도기만 덩그러니 남아있었습니다. 구식이라서 안 가져갔나 봐요. 아마도 샤워장에서 사용한 후 깜빡 잊고 그곳에 놓아 둔 채 돌아왔던 모양인데, 며칠 사이에 이렇게 초토화되다니, 우습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고, 아무튼 기분이 묘했습니다. 하지만 챙기지 못한 건 나의 실수, 그냥 웃고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나마 면도기와 바스켓은 돌아왔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요?


대단한 결의로 시작한 게 아니라 그저 우연찮게 시작한 금연이지만, 금연은 그럭저럭 3일째 이어지고 있다. 물론 여러 차례 위기가 있었지요. 예를 들어 비 내리는 창밖의 풍경을 보았을 때나, 식사를 막 끝냈을 때, 혹은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있을 때에는 많이 흔들렸습니다. 평소에 담배를 피워 물고 하던 일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무엇보다 최근 발간된 고은 선생의 시집과 관련한 추문을 듣게 되었을 대는 정말이지 줄담배를 피우고 싶었습니다. 성희롱 사건 이후 5년 만에 사과 한마디 없이 문단에 복귀한 고은 선생을, 보수언론과 여당 정치인들은 기회는 이때다 하고 달려들어 물어뜯고 있는 중입니다. 똥 묻은 개들의 지랄이 한창인 것이지요. 하지만 고은 선생의 처신도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고은 선생은 설사 다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해도, 자신을 믿고 사랑해 준 독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한 후(변명이 아니라 설명), 이유야 어떻든 가십과 추문의 대상이 된 것에 관해 사과했어야 옳습니다. 하지만 선생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사과하면 의혹을 스스로 인정하는 결과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그리고...... 나 원 참...... 사실 모든 출판사가 이번에 나온 선생의 시집 출판을 꺼렸다고 합니다. 예민한 문제 앞에서 보인 선생의 태도도 그렇고, 작품의 성격도 그렇고 아직은 시의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하지만 실천문학사는 고은 선생에게 면죄부를 주듯 적극적으로 나서서 책을 내주었다는군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흡연 욕구를 간신히 참았습니다. 심지어 現 윤모 대표는 편집주간(구효서 평론가)도 모르게 계간 <실천문학> 겨울호에 고은 시 특집을 독단적으로 마련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건강하고 문학성도 뛰어났던 시절의 <실천문학>이었지만, 그 잡지를 통해 등단한 나로서는 이런 대표의 전횡과 아마추어리즘에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윤 대표는 많은 이의 희생과 헌신으로 이룩한 실천문학의 역사와 성과를 마치 사적 전유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독자들은 구매 거부운동까지 벌이고 있고, 옛 동지들조차 시인과 출판사에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니, 염치를 모르는 노 시인과 탐욕적인 출판사 대표가 뻘짓 한 번 제대로 한 듯 보입니다. 나라 돌아가는 꼴이나 문단의 꼴이나 정말 흡연을 권하는 사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사흘 간의 금연도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닌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