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는 생의 흔적을 남긴다 (01-04-수, 맑음)
녹슬고 구부러진 못, 이력이 있을 것이다. 묻지 않아도 짐작되는 이력이다. 못이 사물과 사물을 단단히 결속하려면 두 사물 모두와 몸을 섞어야 한다. 그것이 못의 운명이다. 사물이 못을 거부하거나 망치의 힘이 균일하지 않을 때 못은 구부러지거나 튕겨나간다. 체념이거나 저항일 것이다. 하지만 망치는 못보다 힘이 세다. 굽은 못은 억지로 빼내져 마구 두들겨 맞은 다음 이미 낸 길을 피해 다른 자리를 찾는다. 못은 순순히 새로운 길에 몸을 박거나 사물의 표면에 널브러진다. 널부러진 못은 자신과 사물 모두에게 상처이거나 저항의 이력이다.
나도 가끔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다. 만약 만나게 될 상처가 나 혼자 감당하면 되는 것이었다면 하루에도 수십 번 상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농도는 다르지만) 상대에게도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만두었다. 섞일 수 없는 섞음은 절망이고 상처다. 나는 상처에 익숙하지만, 익숙한 상처라고 안 아픈 건 아니다. 모든 상처는 아프다.
점심 먹고 돌아오다 교육청 앞 홈플러스(지하 1층에 있는 다이소)에 들러 휴대용 가습기를 구매했습니다. 다이소 가격치고는 고가인 5천 원(*^^*)이었는데, 이 아이가 생각보다 성능이 괜찮더군요. 무드 등(燈) 기능도 있다는데, 사무실에서 분위기 잡을 일은 없으니 패스! 물통을 분리하지 않고 그냥 위쪽으로 급수해도 되는 게 무엇보다 편리했습니다. 소박한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녁에는 민예총 이사장 김정렬 형이 교육청을 방문했습니다. 참교육학부모회와 관련한 기자회견 때문에 방문했다가 3층에 올라온 것입니다. 오랜만에 내 방에서 수다 떨다가 저녁에는 갈매기에 들렀습니다. 유쾌한 술자리였습니다. 무엇보다 형은 타고난 이야기꾼입니다. 그래서 형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냥 유쾌해집니다. 그리고 몰랐던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형의 머릿속은 정보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지요. 들어갈 때는 딱 한 병씩만 마시고 오자고 서로 다짐했는데, 먹다 보니 5병을 마셨습니다. 일어서며 술값을 계산했더니 "왜 문 형이 계산해요?" 하며 펄펄 뛰더군요. "우리 동네잖아요. 부평 가면 형이 사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둘이서 전철 타고 돌아왔습니다. 지하철 정거장에서 사진도 찍었지요. 소년들 같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