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12-29-목, 맑음)

달빛사랑 2022. 12. 29. 20:30

 

몇 개의 모임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았다. 오늘도 작가회의로부터 두어 개의 부고를 받았고, 친구 이선수의 딸 결혼 청첩을 받았다. 물처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누군가는 하늘에 들어 지구를 가볍게 했고, 또 아이들은 태어나 가벼워진 지구를 채우고 있다. 얼마나 분주한 세상인가. 세상의 분주함 만큼 나의 하루도 분주했다.

어제 마신 술이 잘못되었는지 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속은 가라앉았지만, 영화를 보다가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 한 통을 사왔다. 이럴 때 보면 나는 도대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몸에게 미안하다. 나의 홀대를 꿋꿋하게 견디며 지금 이만큼의 건강을 유지해 주는 것도 눈물겹게 고맙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통을 다 먹었을 테지만, 오늘은 반 통 넘게 남겼다. 그래도 겨울밤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냉면만큼이나 맛있다. 몸에 안 좋은 게 으레 더 맛있게 느껴지는 법이다. 엄마의 접란에서 길게 자란 꽃대를 잘라주고 그곳에서 자란 뿌리 하나는 거두어 서재에서 수경하기로 했다. 이 뿌리에서 나오는 꽃대는 자르지 않고 높은 곳에 올려놓고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지게 키워볼 생각이다. 

 

저녁나절,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 터널 안에서 화재가 나 다섯 명이 사망하고 36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속보가 떴다. 다시 또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발생했다. 요즘 대한민국은 집 밖으로 나가면 죽음을 감수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질식해서 죽고 타서 죽고 빠져 죽고 맞아 죽고 극한까지 밀리다 스스로 죽고, 도무지 안전한 곳이 없다. 그런데도 정치인들은 기득권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자신들의 위법에는 눈을 감은 채 '오직 법대로!'를 강조하는 소통 단절의 정부와 여당 때문에 국민의 짜증은 극에 달했다. 앞으로도 치욕과 모멸, 탄식의 4년을 더 보내야 할 텐데, 어쩌란 말인가. 가지마다 눈을 얹은, 한결같이 굳세고 오롯한 정원의 나무에게 묻고 싶다.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대답 좀 해보렴. 이게 나라냐? 

 

잠은 안 오는데, 겨울밤은 저 홀로 깊어가고, 마실 나간 마음은 아직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질 않네. 정원의 나무도 오늘 밤, 내 질문에 대답하려고 밤새 생각에 골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