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밥을 먹는다는 일 (12-28-수, 맑음)
점심은 비서실 식구들과 함께 먹었다. 사람들이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식구나 지인들과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여행을 간다. 산에 오르기도 하지만 결국 올라갈 때 함께 먹고 내려와서 또 함께 먹고 마시고, 산까지 함께 이동하는 것이니, 결국 여행 가서 밥 먹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함께 밥을 먹는다는 건 모두가 식구라는 걸 확인하는 일이고, 그 식구들과 1년을 무탈하게 지내 온 것에 감사하는 일이다. 식구가 아닌 사람이 식사 자리에 올 리는 만무하지 않은가.
비서들이 참치집을 예약해서 오랜만에 참치를 먹었다. 날이 추워 오들오들 떨며 식당에 들어왔는데, 차디찬 참치가 나오니 추위 타는 몇몇은 몸을 움츠리며 손을 비벼댔지만 그래도 입으로는 연신 참치가 들어갔다. 그 모습이 우스워 나는 피식 웃었고, 나와 눈이 마주친 비서들은 큰소리로 웃었다. 하긴 덜덜 떨면서도 입으로는 초밥을 씹고 있었으니, 자신들이 생각해도 우스웠을 것이다. 마지막 코스로 묵은 김치를 송송 썰어 넣고 잔 새우를 듬뿍 넣어 팔팔 끓인 국밥이 나왔는데, 이게 그야말로 진국이었다. 모두가 후후 불면서 맛있게 먹었다. 모두의 입에서 "아, 시원해" 하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술꾼인 내가 봐도 속을 풀어주는 시원한 국밥이었다. 나올 때는 이마에 땀이 송송 맺혔다.
참치 식당을 나와 근처 '커피 볶은 집'에 들러 차를 마셨다. 연가보상비가 입금되었다며 비서실장이 찻값을 냈다.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나에게도 연가보상비가 입금되었다는 문자가 와 있었다. 26만 4천 원, 당연히 받을 돈이었지만, 이렇게 받는 건 공돈 같은 느낌이다.
퇴근하면서 부재중 전화 목록을 확인하고 혁재에게 전화했다. "형, 무슨 일 있어요. 어제는 전화도 꺼져 있고.... 걱정했어요" 물어오는 혁재에게 "배터리가 방전됐는데 깜빡 잊고 있었나 봐"라고 했다. 거짓말이다. 일부러 꺼놓았다. 휴일만큼은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았다. 연말에 예정됐던 그의 공연은 '동화마을'에서 진행할 모양이었다. 선아가 그녀의 애인과 동화마을에 와서 술 마시고 있다며 "건너오실래요?" 했지만, 거절했다. 이제 먼 거리 이동이 부담스러워졌다. 동화마을은 아직 나에게 물리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먼 곳이다.
통화하며 걷다 보니 갈매기였다. 연말이라 그런가 손님이 많았다. 그 많은 사람 중에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막걸리 두 병을 마시고 일어서려는데, 민예총 총준위회의를 마친 병걸이와 경옥이가 뒤늦게 들어왔다. 결국 후배들과 몇 잔을 더 마시다 양해를 구하고 먼저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들여다 본 모든 술집은 손님들로 붐볐다. H에게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연말 일정이 빠듯한 모양이었다. 건강 조심하며 즐겁게 일하라고 말해주었다.
진안의 영택이에게도 전화했는데, 영택이는 지금 화성에 올라와 있었다. 창길이와 함께 한옥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뭔가 마음먹은 게 있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는 후배들의 용기가 부러웠다. "나중에 내 집도 한 채 지어줘라" 부탁했더니 영택이는 웃으며 "돈만 준비해 둬요" 하며 웃었다. 이렇게 저렇게 세월은 흐르고 그 세월 속에서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하고 준비하는 후배들의 앞날이 늘 환하기를 빌었다. 날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