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동화마을의 후배들 (12-05-월, 맑음)
날이 찹니다. 바람이 없었으니 망정이지 바람이 불었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을 겁니다. 이 추운 날, 송월동 동화마을을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혁재와 로미, 은준과 상훈을 만났습니다. (내 쪽에서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만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말 그대로 그냥 만난 겁니다. 술 한잔하려고 만난 거지요. 하지만 로미에게는 특별한 계획이 있어 보였습니다. 상훈이에게 누군가를 소개해주려던 모양이었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하든 그렇지 않든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소중한 일입니다. 동화마을에서 만났으니 동화 같은 관계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퇴근해서 동화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깔린 7시 경이었습니다. 상훈이는 취해 있었고, 혁재는 주방에서 연신 음식을 만들고 있었으며, 상훈이 맞은편에는 짙은 화장의 처음 보는 여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재미있고, 낯설고, 막 그랬습니다. 잘 꾸며놨더군요. 술값은 얼마나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현금으로 15만 원을 주인인 은수에게 전했습니다. 대접받는 자리라고 알고 갔는데, 술값을 내고 술을 먹었네요. 돌아올 때는, 택시를 불러 은준, 하동과 함께 타고왔습니다. 제물포에서 은준이를 내려주고, 주안역 근처에서 하동이를 내려주었습니다.)
그나저나 나도 동화를 무척 좋아하는데, 동화를 사랑하는 나에게는 왜 동화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요? 하긴 동화 같은 이야기가 쉽사리 벌어진다면 그건 이미 동화가 아니라 현실의 이야기겠지요. 동화는 동화일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동화는 어디까지나 동화일 뿐입니다. 나는 왕자도 악당도 아니고,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거나 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도 없습니다. 자신의 별을 지키는 어린 왕자는 더욱 아니죠. 하지만 동화 속 주인공들이 영원히 동화 속에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유쾌한 상상의 세계를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만들 수 있는 시인입니다. 팍팍한 세상을 눈물로 적실 수 있고, 방아 찧는 토끼를 데려올 수도 있으며, 호박 마차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내가 창조한 세계는 문장 안에 있고, 내 창조의 도구는 펜과 키보드입니다. 글을 통해 창조하지 못할 세상은 없습니다. 적어도 나는 내가 만든 문장 속에서는 조물주이자 주인공인 셈이지요.
이야기가 갑자기 붕! 하고 비약했어요. 늘 이런 식입니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를 몇 주 앞둔 오늘, 부디 이 겨울에는
모두가 행복한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웃을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슬픈 동화도 있다는 건 잊지 마시고요.
동화(動畫) 속 세계에 동화(同化)되어 우리만의 새로운 동화(冬畵)를 만드는
그런 겨울이었으면 좋겠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