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찾아온 한파 (11-30-수, 맑음)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했다. 하지만 점심 먹고 나올 때 뉴스를 보니 내일은 기온이 더욱 떨어져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일 거라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볕이 좋아 바람 없는 한낮의 양지(陽地)는 따듯했다. 현재 청사 로비에서는 노조원들이 파카를 입고 목도리를 한 채로 농성 중인데, 그악한 현실과는 달리 한낮의 볕은 그들에게 얼마나 자비로울 것인가. 그나저나 청사의 고양이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요 며칠 도통 볼 수가 없다. 모두 무탈해야 할 텐데……. 저마다의 방식으로 겨울을 나고 있는 모든 생(生)의 아침이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녁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갈매기에 들렀다. 도착했을 때는 손님이 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예약 손님들과 단체 손님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병째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 준식 형과 형진 형이 2차로 갈매기를 찾았다. 그들이 내 옆자리에 앉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몇 잔 더 마셨다. 준식 형은 “소년 같았던 계봉이가 왜 이렇게 늙었니? 난 정말 너만은 늙지 않을 줄 알았다.”라고 걱정인지 비난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우울해졌다. 늙고 싶어 늙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리고 상대가 말을 하지 않아도 늙는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체감하는 건 당사자이다. 입가심으로 각자 맥주 한 병씩만 마시고 갈 예정이라던 그들은 결국 4병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때 술집 창밖으로 상훈이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집에서 술 마시다가 2차를 가려고 나왔다가 형들과 나를 본 모양이었다. 결국 그들까지 합류해 술을 더 마셨고, 모두가 한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상훈이와 나의 아들이 다니던 유치원 원장이었던 준식이 형이 풀어놓은 ‘아들’에 관한 추억이 새삼 아련했다. 형진 형과 내가 처음 친해지게 된 계기 속에는 ‘활극’도 있었다. 벌써 수년 전의 일이다.
갈매기를 나와서 형들은 귀가했고, 나와 상훈, 하동 등은 근처 경희네로 2차를 갔다. 누나는 한결같이 밝았고, 경희네의 대합탕은 여전히 시원하고 맛있었다. 모두 춥다고 몸을 웅크렸지만, 나는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소주 한 병씩 마시고 순복음교회까지 걸어와서 버스 타고 귀가했다. 올겨울은 한파가 잦을 거라고 하는데, 겨울은 모름지기 추워야 겨울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힘든 삶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이깟 추위쯤이야 대수겠는가. 나이 들어 늙는 거야 할 수 없지만, 나이보다 늙는 것은 슬픈 일이다. 겨울의 한복판에서 마주하게 될 모든 상황은 내게 어떤 표정을 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