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서 그들을 보다 (11-26-토, 맑음)

달빛사랑 2022. 11. 26. 00:15

 

아침나절, H는 전화를 걸어 "선배, 오늘 저녁 다른 약속 없으시면 인권영화제에 같이 가지 않으실래요." 했다. 후배 창길이가 집행위원장으로 애쓰고 있는 인권영화제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방문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간은 됐으나 컨디션이 안 좋은 때도 물론 있었고. 또 다른 말도 안 되는 이유 하나, 인권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져 며칠간 마음을 앓아야 하는 것도 참석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H는 5시까지 인천음악창작소에서 주최하는 포럼과 쇼케이스 공연에 참석한 후, 5시 10분쯤 다시 전화를 했다. 우리는 5시 40분쯤 주안역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잠깐 근처를 산책(?) 한 후, 7시 30분에 상영하는 영화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을 보기 위해 영화공간 '주안'으로 올라갔다. 7시쯤의 영화관은 다소 더웠다. 얇게 입고 나온 탓에 얼었던 몸이 일시에 따뜻해져 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영화제 조직위원이자 후원자인 H는 이곳저곳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자료도 얻어오고 선물도 받아왔다. 잠시 후 창길이가 와서 우리를 안내했다. 현장에서는 다양한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었는데, H는 고양이 발 모양의 양초 받침대를 맘에 들어했고, 그 모습을 본 창길이는 나에게 "형, 이거 하나 사주세요." 하며 옆구리를 툭 쳤다. 그렇지 않아도 사줄 생각이었는데...... H는 무척 기뻐했다. "엄마랑 크리스마스 때 여기에 양초 켜놓고 파티해야겠어요." 하며 웃었다. '암 것도 아닌데, 화들짝 기뻐하니 나도 좋아' 그러나 말을 하진 않았다. 


영화 '당신과 나를 잇는 법'은 20대 여성 감독들(이들이 연대한 공통분모는 모두 페미니스트에 큐어 정체성을 지녔다는 점)이 만든 다섯 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옴니버스 영화였다. 

 

그녀들이 밝힌 다음과 같은 연출의도와 시놉시스를 보면 이 영화가 겨냥하는 타격 지점이 무엇이고 어디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차별은 ‘나’의 바깥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나타나는 구별들, 그것은 내가 만든 질문일까? 그런 구별들은 세대를 뛰어넘어 다시 화합할 수 있는 것일까? 마음 깊은 곳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용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당 신과 내가 함께 해방되기 위해서 나의 자리는 어디여야 할까? 수없이 많은 질문들은 하나의 문장으로 묶인다. 차별을 끝장내는 것은 우리들의 연결이라고.(연출 의도)

 

2030 퀴어 페미니스트인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쟁취하기 위한 광장에 함께 섰다. 그러나 광장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었다. 내 안에서 발생한 차별,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차별,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차별의 공간까지. 이런 공간들을 경유하며 우리를 둘러싼 구조적 차별에 대해 퀴어-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 다시 질문한다. 나는 왜 ‘평등한 우리’ 없이 자유로울 수 없는가? (시놉시스)

 

영화가 끝난 후, 감독들과의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그녀들이 던지는 사회적 화두에 공감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간 나는 페미니즘이나 퀴어 문제에 관해 무척 진보적인 관점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나의 관점은 무척 표피적인 것이었다는 것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이들이 만들려는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투쟁에 무임승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부끄러움도 느껴졌다. 


영화관을 나와서 H와 근처 양꼬치집에 자리를 잡고 창길이를 불렀다. 뒷정리를 마친 창길이는 전화한 지 15분쯤 지나서 도착했다. 우리는 지남선과 양갈비, 양꼬치를 안주로 고량주와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창길이를 통해 영화제 뒷얘기와 기성세대인 우리의 대화법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에 관한 깊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10시 30분쯤 혁재와 연락이 되어 혁재도 합류했다. 친구와 술 마신 후 택시로 귀가하던 혁재는 내 전화를 받고는 차를 돌려 온 것이다. 도착했을 때 혁재는 약간 취해있었다. 영업 마감 시간도 얼추 되었고, 무엇보다 양꼬치집에는 막걸리가 없어서 (혁재를 위해) 바로 앞에 있는 막걸릿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혁재는 무척 다변이었고, H는 무척 즐거워했다. 시간이 갈수록 거리의 바람이 예사롭지 않게 변해갔다. 오늘 밤을 끝으로 이제는 가을을 보내줘야만 할 것 같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경계이자, 마음으로 느끼는 올해의 마지막 가을밤이었던 셈이다. 술집을 나왔을 때 공기는 더욱 차가워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