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R을 아시나요? (11-23-수, 맑음)
생각보다 춥지 않은 날씨였습니다. 어제 비가 와서 오늘은 무척 추워질 줄 알았거든요. 아무튼 11월 날씨치고는 지나치게 따듯합니다. 덕분에 가을은 제법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서실장이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출장 갔거든요. 무척 심심했습니다. 물론 업무 시간에 실장과 내가 잡담을 하거나 딴짓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결코 아닙니다만, 옥상 흡연파인 실장이 없어서 매번 나 혼자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웠습니다. 있을 때는 몰랐는데 막상 없으니 무척 허전하네요. 그의 고민 들어주는 것도 내 하루의 루틴이기도 했고요.
오래된 팝 밴드 C.C.R을 아시나요? 만약 C.C.R을 알고 있고, 더 나아가 그들의 히트곡까지 거침없이 말할 수 있다면 그분은 아마도 50대 후반 이상의 연세일 겁니다. 내가 C.C.R 노래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6학년 때(70년대 중후반)로 기억합니다. 물론 밴드 이름은 몰랐고, 누나들과 동네 형들이 흥얼거리던 멜로디를 자주 들어 익숙했던 거지요. 중학교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팝송에 빠져들기 시작했을 때, 형과 누나들이 흥얼거렸던 노래를 부른 가수가 바로 C.C.R이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짝이었던 최 아무개라는 친구가 'Cotton fields'를 그럴듯하게 부르는 걸 보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Who will stop the rain'이나 'Proud Mary' 등의 노래를 나 역시 흥얼거리게 되었습니다. 이후 C.C.R은 존 덴버, 사이먼&가펑클과 더불어 제 최애 가수 3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더 흐른 후, 난 그들의 노래 대부분이 반전과 평화, 환경을 다룬 노래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어릴 때와는 좀 다른 결로) 그들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학생들은 소풍 가거나 수학여행을 갔을 때면 남녀를 막론하고 어김없이 'Proud Mary'를 틀어놓고 고고춤을 추었습니다. '옷 벗고 자리에 누워, 호박 같은 마누라를 옆에 끼고서' 어쩌고 하는, 아주 선정적인 내용으로 가사를 바꿔 부르는 녀석들도 있었지요. 그쪽 방면으로는 도가 튼 날라리 형과 누나들이 그렇게 부르는 걸 따라한 거라 생각됩니다. 아무튼 C.C.R과 그들의 노래는 제 사춘기 시절의 추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당시 나와 함께 가사를 서로 고쳐주며 C.C.R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친구들은 지금 모두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요? 어제 차를 타고 가다가 C.C.R의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을 듣는 순간, 그 옛날의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습니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가수들의 목소리는 그때 그 시절 그대로인데, 그 노래를 듣고 있는 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장년의 아저씨가 되어 있으니 세월 참 무상하더군요. 한참을 그 시절의 추억에 빠져있었습니다. 음악은 지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확실하고 구체적인 기제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 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