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민족민주노동열사 합동추모제 (11-14-月, 흐렸다 맑음)
아침에 만났던 잔뜩 흐린 하늘은 정오가 되면서 활짝 개기 시작했다. 머리칼을 제멋대로 흐트러뜨린 가을바람은 유순했다. 11월에 만난 바람이 이리도 유순하다니 떠나고 싶지 않은 가을의 안간힘과 다가올 겨울의 너그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집을 나서며 H에게 보낸 안부 문자는 내 걸음과 비슷한 속도로 H에게 도착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작년 초까지 매번 확인하며 안도했던 엄마의 안부를 이제는 물을 수가 없다. 부재의 이유가 명백한 존재에게는 안부를 물을 수가 없을 테니까.
점심은 보운 형과 둘이서 먹었다. 난 수제 돈가스를, 보운 형은 선짓국을 먹었다. 늘 가던 식당에서 오늘은 색다른 음식을 시켜본 건데, 그냥 돼지국밥을 먹을 걸 하고 후회했다. 양은 또 어찌나 많은지 남기지 않고 다 먹느라 무척 애를 먹었다. 하긴, 맛만 있다면 양 많은 건 책잡을 일은 아니지. 어쩌면 식사 전에 초콜릿바 두어 개를 먹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칼과 포크를 달각거리며 돈가스를 먹고 있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돈가스를 먹다 보니, 오래전 경양식집을 드나들며 애인과 돈가스를 먹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애인들을 위해 고기를 일일이 썰어주곤 했는데, 그녀들이 그것을 감동적인 배려로 받아들였는지, 혹은 쓸데없는 오지랖으로 받아들였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다만 애인들은 한 번도 사양한 적이 없고, 매번 고맙다고 말을 한 걸 보면 그녀들 역시 그러한 행동이 싫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긴 그녀들 역시 연애에 서툴렀던 건 매한가지였기에 그런 행동을 자신이 대우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여겼을 게 분명하다.
저녁에는 주안 쉼터 공원에서 2022 인천민족민주노동열사, 희생자 합동추모제가 열렸다. 해가 갈수록 참석자 수가 점점 줄고 있는데, 아쉽고 슬프다기보다는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들과 동시대를 같이 살았던, 남은 사람들은 평범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열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시대 상황과 그 죽음의 의미를 기억하고 보존하여 현실에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야 옳았지만, 확대는커녕 애초의 죽음조차 잊힐지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 남은 자들의 직무유기가 맞다. 하지만 (그들과 동시대를 살았던) 남은 자들도 나이를 먹고 그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한둘이 아니다. 잊히는 그들의 죽음이 애석하고, 늙고 병들고 늙어가는 남은 이들의 삶 또한 애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