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받다 (10-28-金, 맑음)
존경하는 이향지 선배님께서 소중한 시집을 보내주셨습니다. 연세가 무색하게 여전히, 한결같이 시작에 치열하신 선배님의 이번 시집 제목은 ‘야생’입니다. 지나온 한 생을 돌아보며 드물게 자족하거나 대개 회한에 젖거나 하는 것이 범인의 노년일 테지만, 선배님에게 ‘지금’은 저마다 분주한 날것의 삶이 펄떡대는 ‘야생’입니다. 가령 다음과 같은 ‘시인의 말’을 읽었을 때는 동업(同業)의 후배로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고, 한편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며 부끄러워지기도 했습니다.
“다가가기 위해 더듬이를 세웠으므로, 매 순간이 새싹이었다.
나의 시, 나의 실천, 이루었거나 못 이른 진수들. 미완성인 채로 언제 손을 놓아도 억울할 것 없는 포트폴리오다.”
미완성인 채로 손을 놓아도 억울하지 않은 시인의 삶이란, 결과와는 무관하게 과정에서 치열했으므로 후회 없다는, 당당함의 표백(表白)이거나 혹은 ‘부족하다 한들 이제사 어쩔 것인가’라는, 야생(野生)에 순명(順命)하는 담담함일 수도 있을 겁니다. 시와 시작(詩作)에 솔직하고 치열했던 시인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겠지요. 제가 마음이 벅찼던 한편 부끄러웠던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저에게는 물론이고, 고단한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위로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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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제나 새로 돋는 잎이다
나는 시간 여행자
‘지금’이라는 간이역에 있다
역사도 역무원도 벽시계도 철로도 어떤 형상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야 명명하는 순간 과거가 되는 간이역
‘아니야’ 하는 순간 ‘허공’이라는 ‘폐역’이 되겠지만
‘지금’은 ‘지금’ 이대로 초록빛이다, 모든 탈 것들의 간이역ㅣ‘지금-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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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간이역의 탑승권을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저만의 ‘야생’에 펼쳐지고 있는 매 순간의 ‘지금’을, 희망을 머금고 있는 저 숱한 초록빛들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가꿔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건강, 건필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