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가을이라 가을바람 솔솔 불어오고 (10-24-月, 맑음)

달빛사랑 2022. 10. 24. 00:49

 

새벽 4시,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 어제 후배들이 남기고 간 술판의 흔적들을 청소하고 누나가 사다 준 부대찌개를 끓여 이른 아침을 먹었습니다. 6시쯤 다시 잠이 들어 8시 30분에 깨었고 오늘 하루 월차를 낼까 생각하다가 조금 늦게 청사로 출근했습니다. 날이 너무 좋아 출근길에는 기분이 조금 말랑말랑해졌습니다. 오전에는 소통협력실장의 부탁으로 수능 보는 학생들을 위한 현수막 응원 문구를 만들어 보냈고, 점심은 비서실 직원들과 구내식당에서 먹었습니다. 버섯 소고깃국과 호박과 가지, 닭고기 탕수육이 반찬이었는데, 오랜만에 내 입맛에 맞는 식단이었습니다.

 

종일 청명한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어 외투를 입지 않으면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탕비실 옷장에 있는 민방위복을 꺼내입었습니다. 몸이 으슬으슬한 게 감기가 오는 게 아닌지 걱정입니다. 이번 주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심사에, 세미나에, 포럼에, 특보단 만찬에, 후배 생일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정이 잡혀 있어 피곤한 한주가 될 듯합니다. 그래도 나를 불러주는 자리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라고 스스로 위로합니다. 가을바람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겨울이 당도해 있다는 말이겠지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될 수 있으면 가을의 남은 정취를 온전히 느껴보도록 노력할 작정입니다.

 

나의 사랑은 더욱 빛나지도 빛을 잃지도 않고 있습니다. 내 특유의 사랑법은 늘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딘 진행에 조바심 내지 않습니다. 어제 후배들은 나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지금의 거리가 딱 좋습니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거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유롭게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고 가끔 공허해질 때 편하게 만나 대화를 나누는 친구 같은 사이, 그게 내가 바라는 사랑이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연애입니다. 만에 하나 사랑이 빛을 잃어 희미해진다 해도 애달파 눈물짓거나 한숨 쉬지 않아도 되는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 사랑이 끝나도 다시 친구로 돌아갈 수 있을 만큼 상처가 깊지 않은 사랑, 그게 겁쟁이인 내가 바라는 사랑입니다. 상대에게 내가 전 세상이고 사고의 중심이길 원하지 않습니다. 눈멀고 미친 사랑은 이제 두렵습니다. 그러다 스펀지에 물이 배어들 듯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깊게 스밀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이겠지요. 아무튼 나는 지금 무척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