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들을 만났어요 (10-22-土, 맑음)
아침에 운동 다녀와서 집안 청소하고 누나가 사다 준 순댓국으로 이른 점심을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어수선한 서랍들을 정리했습니다. 좀처럼 쓸 일이 없는 자잘한 물건들이 서랍 안 이곳저곳에 숨어 있었습니다. 막상 버리려 하면 '혹시 언젠가 쓸 일이 있지 않겠어?' 하는 생각에 다시 서랍에 넣어 두곤 한 다양한 물건들, 이를테면 철심 끈, 5핀 충전 케이블들, 오래전에 사 둔 전자담배, 안경닦이, 안 쓰는 유선 키보드, 견출지, 철 지난 다이어리, 추파춥스, 식당에서 준 생강 맛 알사탕, 은단 케이스, 외장 배터리들, 휴대폰 충전기, 다 쓴 수첩, 쓰지 않는 필기도구들, 각종 영수증과 명함, 구 VGA 모니터 케이블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오늘은 다소 모질게 안 쓰는 물건들을 버렸습니다. 서재의 서랍들과 서랍 안 작은 상자들이 숨통이 트인다고 휘파람을 불었을 겁니다. 맘이 다 시원하더라고요.
오후에는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다인아트 윤 대표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극단 '십 년 후'의 공연을 보러 부평아트센터로 가고 있는데, 공연 마치고 나오면 만나 막걸리 한잔하자는 것이었지요. 공연은 3시에 시작하고, 러닝타임은 2시간이 훌쩍 넘어 결국 우리는 6시가 다 되어서야 만났습니다. 김영옥 화백도 함께 왔더군요. 갈매기에 들어올 때 그녀들의 손에는 커다란 보타리가 들려 있었는데, 그건 내게 줄 단감과 생강청, 그리고 파김치, 배추김치, 총각김치 등 각종 김치들이었습니다. 그 무거운 걸 내게 주겠다고 들고 오다니, 감동이었습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더군요. 생강청과 김치는 김 화백의 고향인 전주 산인데, 집에 와서 먹어보니 정말 맛있었습니다. 감들 중 서너 개는 연시가 되어 있었습니다. 첫맛은 약간 씁쓸했지만, 끝 맛은 달콤했습니다.
갈매기를 단골로 둔 '참새'들이 참새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만무하잖아요? 아니나 다를까, 술 마신 지 한 시간쯤 지났을 때쯤 수홍 형을 비롯한 쥐띠 모임 선배들이 옆자리에 앉아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그중 한 명인 이화규 선배는 다음주 토요일(29일) 시민합창축제에서 내 시를 노래로 만든 '5월의 또 다른 빛'이 시립합창단, 시립교향악단과 함께 연주될 예정이라며 고맙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내심 뿌듯했습니다. 시립예술단이 함께 할 줄은 몰랐거든요. 기대가 큽니다.
갈매기를 나온 후에는 우리 일행과 수홍 형, 넷이서 경희네로 2차를 갔습니다. 하지만 일찍 영업이 끝나서 하는 수 없이 바로 앞에 있는 퓨전 이자카야 '류'에 들렀습니다. 이번 주에만 두 번째네요. 수홍 형과 윤 대표는 많이 취했고, 나는 전혀 취기가 없었으나 더 마시고 싶진 않아 일어서려고 할 때, 오직 김 화백만 술이 모자랐는지 "난 더 마실 수 있는데...... 그럼 남은 술이라도 다 마시고 가요"라며 무척이나 아쉬워했습니다. 술자리에서 김 화백이 윤 대표의 페미니즘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했지만 윤 대표는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듣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 두어 개가 도마에 올랐는데,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술판이 싫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홍 형 택시비 12,500원을 결제해 주고, 우리 집 택시비 8,800원을 결제하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습니다. 주말이라 그런지 부르면 즉시 달려온다는 블루 택시도 좀처럼 연결되지 않더군요. 다행히 수홍 형은 호출 즉시 차가 도착해 먼저 귀가하고, 나는 8분쯤 지나서야 택시가 배당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받아온 감과 김치들을 냉장고에 넣고 보니, 갑자기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분간 김치 걱정은 없겠네요. 내일은 소래습지에 가야 합니다. 요즘 행사가 너무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