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하나 같은 두 개의 약속 (10-20-木, 맑음)

달빛사랑 2022. 10. 20. 00:46

 

뭔 약속이 이리도 공교롭게 얽히고설킨 거지. 같은 날, 두 건의 약속이 잡혔다. 하나는 이미 열흘 전에 잡아둔 후배들과의 약속이고 또 하나는 어제 “목요일 저녁에 혹시 약속 있어? 오랜만에 희열이하고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보자”라며 전화를 걸어온 고교 동창 기홍이와의 약속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선약을 이유로 기홍이의 제안을 거절했겠지만, 이 친구가 약속 장소로 잡은 곳은 5시 갈매기이고, 후배들과의 약속 장소는 6시 30분 인천집이다. 일단 출입문을 마주한 두 집의 거리가 10여 미터도 안 되고, 약속 시간도 1시간 30분 갭이 있으니, 양쪽을 오가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예기치 않게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 날, 혼자 술 마시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대여섯 명이 북적거리며 함께하게 되는 그런 날 말이다. 이런 식의 ‘만남의 잭팟’은 행운일 수도 있고, 불행일 수도 있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난 날은 당연히 행복한 날이다. 나와도 그렇지만 그들끼리도 한자리에 모이기가 쉽지 않은 사람들이 일시에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공교로운 행운인가. 물론 거북한 사람들과는 단 일 분조차 대화하기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무튼 오늘은 두 약속 모두 보고 싶은 사람들과의 만남이라서 어느 자리에 있든지 유쾌한 시간이 될 것이다. 더욱 공교로운 것은 오늘 선약 멤버 중 하나인 은준이가 기홍이의 인성초등학교 후배라는 것인데, 어제도 기홍이는 전화해서 “저번에 만난 내 후배라는 친구, 그 친구에게도 전화해서 나올 수 있냐고 물어봐 줘.”라고 부탁했다. 은준이도 양쪽을 오가야 할 듯하다. 그나저나 친구들을 만나는 건 좋은데, 잠을 못 자서 그런지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저녁에 상황을 봐서 적당히 마시고 일찍 들어와야 할 텐데, 걱정이다. 엊그제 혁재도 나도 오랜만에 필름이 끊기는 낯선 상황을 경험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12시 5분)


갈매기에는 5시 조금 넘어 도착했다. 이미 기홍, 희열 두 친구와 은준이 나와 있었다. 종우 형은 도착하자마자 비타민 음료 하나를 권하면서 "오늘 두 탕 뛰려면 체력관리 해야 하니까 먹어둬요." 하며 웃었다. 은준이가 오늘 약속에 관해 이미 말을 해준 모양이었다. 로미와 혁재, 상훈이와의 약속 시간인 6시 30분이 되었지만, 나는 은준이마 그 자리로 보내고 내 친구들과 좀 더 이야기를 나눴다. 희열이는 정말 오랫만에 만났기 때문에 밀린 이야기가 많았다. 7시쯤 되자 저쪽 자리에서 왜 안 오냐고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천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은준이 역시 두 자리를 분주하게 오갔다. 인천집에 도착하니 혁재와 로미 커플과 상훈이 말고도 여성 두 명이 앉아 있었다. 로미 씨의 후배들이라고 했는데, 자리가 다소 낯설었다. 오히려 뜻밖이었던 것은 화장실 갔다가 만난 전 문화재단 대표이사 최진용 선배였다. 잠시 자기 자리로 데려가 일행들에게 나를 인사시켰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건강해 보였다.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분 같았다. 인천집 사장도 우리 자리에 와서 함께 술을 마셨다. 상훈이와의 친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은데,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녀의 의도는 성공한 듯 보였다. 상훈이가 실제로 매우 흡족해 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곳을 나와서 퓨전 이자카야 '류'에 가서 연어회와 사케를 마셨는데, 입에 맞았다. 하지만 막걸리를 제법 많이 마셨기 때문에 사케는 그리 많이 마시지는 못했다. 다만 근래 들어 오늘처럼 상훈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리 웃으니 나 역시 기분이 좋아졌다. 9시 30분쯤, 일행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내 친구들과 그 자리에 합류한 은준이 역시 그때까지 갈매기에서 술을 마시며 나에게 오라고 전화를 걸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더 마시면 취할 것 같아서 정중히 사양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막 집에 도착했을 때, 어떻게 알았는지 H는 "선배님, 오늘 최진용 선생님 김 아무개 작가님과 술 드셨다면서요? 즐거운 시간이었겠어요." 하고 문자를 보내 왔다. 아무 생각없이 "응, 우연히 만났어"라고 대답을 해주고 곧장 세수하러 갔는데, 닦고 나와서 생각하니 궁금하다. 도대체 어떻게 알게 된 거지? 하지만 묻지 않을 작정이다. 누군가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 연락해주었거나 신통방통한 능력이 있는 모양이지 뭐. 아무튼 정신없고, 유쾌하고, 뭔가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그런, 복잡한 심정의 하루였지만, 그중에서 유쾌함이 제일 크다. 그럼 된 거다. 이제 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