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나를 부르는 소리, 저 소리 (10-16-日)

달빛사랑 2022. 10. 16. 00:31

 

어제부터 경기 성남 판교에 있는 카카오 데이터 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해 현재 카카오톡과 멜론, 티스토리 등 카카오 기반 서비스들이 먹통이 되었다. 일기를 쓸 수 없어 이곳저곳에 글을 남긴다. 나중에 정상화되면 다시 블로그에 옮겨야 하는데,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만큼 카카오 기반 서비스들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 지배의 강도는 화재 사건 하나에 온 나라가 혼란에 빠질 만큼 심각한 것인데, 이후 카카오의 독과점 문제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현재 안 그래도 카카오 주가가 바닥 모르고 추락하고 있는데, 이번 화재 사건과 향후 독과점 분산 논의로 인해 그 하락 폭은 더욱 커질 것 같아 걱정이다. 현재 카카오 주가 하락으로 인한 나의 손해는 1,300만 원, 얼마나 더 떨어질지 마음이 심란하지만 상장 폐지까지는 갈 일이 없으니 그야말로 ‘존버’ 하는 수밖에…… 언젠가는 오르겠지. 적금 이자가 4~5%까지 치솟았다고 난리들인데, 그렇다고 주식 팔아 다시 적금 넣는 건 자존심 상해 안 하련다. 그나저나 사람이 돈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기업의 독과점 문제보다 나의 손해가 사고의 중심에 있는 걸 보면, 나도 속물이 다 됐구나.

가을이면 나를 부르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마음에서 들리고 숲에서 들리고 하늘에서 들리고 내 서재에서도 들린다. 마음에서는 눌러놨던 모종의 감정을 풀어주라고, 풀어 날려버리라고 아우성친다. 그 감정의 정체를 알 것도 같은데, 알면서도 매번 풀어놓지 못한다. 그러다 문득 저물 때가 되면 가을은 나를 말없이 한참을 바라보다 딱한 표정으로 한숨을 짓곤 한다. 이번 가을에 나는 과연 눌러놨던 감정을 풀어버릴 수 있을까? 마음에 해방을 줄 수 있을까?

하늘과 바람, 눈이 시린 햇살과 밤하늘의 달과 별, 붉게 물들어 가는 저 숲과 잎을 떨구는 거리의 나무들, 마지막 빛을 짜내 환하게 빛나는 저 들판의 꽃들도 나를 부른다. “여기야, 바로 여기서 나를 볼 수 있어” 하며 애타게 나를 찾는다. “제발 눈길 한 번 줘 봐! 스러지는 내 마지막 빛을 기억해 줘!” 하며 나를 부른다. 하지만 나는 매번 무척이나 인색했다. 하늘보다는 땅을 봤고, 꽃과 바람과 숲과 나무보다는 술집에 앉아 술을 마셨다. 그러다 결국 가을이 가고 나면 평범한 사물 혹은 배경으로 돌아간 그것들의 침묵을 견뎌야 한다. 나는 뒤늦게서야 황량한 겨울의 한 가운데서 그것들의 특별한 빛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젖는다. 빗나간 사랑이거나 지독한 짝사랑이다. 물론 서로가 서로에게……

가을에 들리는 책장에 꽃힌 책들이 부르는 소리는 비교적 자주 나의 주의를 끌고 내 손길, 눈길을 받곤 하지만, 정작 내가 듣고 싶은 ‘소리’는 하늘의 달과 별, 거리와 숲의 나무들, 책장의 먼지 앉은 책들이 아니라 사랑하는 당신이 나를 찾는 소리다. 모든 소리가 섞여들려도 나는 그 속에서 ‘당신’의 소리를 정확하게 골라낼 수 있다. 내 귀와 내 눈과 내 마음과 내 발길은 늘 당신 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일은 사계절 내내 치르는 일이므로 가을이 지났다고 멈출 수 없는 일, 깨어 있든 꿈속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리움으로 밥을 먹고 그리움으로 술을 마시고 그리움을 잠을 자는 일은 나에겐 너무 쉬운 일이다.

내 방에 있던 텔레비전을 거실로 옮겨놨다. 텔레비전이 있으니 무의식적으로 리모컨을 누르게 되고 자주 눕거나 자거나 한다. 무기력해진다. 유혹의 기제다. 언제 다시 들여다 놓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처럼 영화에 몰입해서는 안 될 거 같아서 큰맘 먹고 행동으로 옮겼다. 오후에는 운동을 다녀왔다. 체력을 키워야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써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