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도 '그곳'에 있다 (9-24-土, 맑음)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정겨운 가을볕을 흠뻑 받았다. 청소와 빨래를 하고, 홈쇼핑으로 김치와 잡곡, 탁상 거울을 주문한 후, 근처 마트에서는 간단한 장을 봤다. 그러느라고 아침 운동은 가지 않았다. 그저 노곤한 몸으로 유튜브 알고리즘이 안내해 준 ‘트와이스’라는 8년 차 소녀 그룹의 영상을 오전 내내 시청했다. 이 그룹에 소속된 일본인 3명이 어찌나 한국말을 잘하는지 대견하고 신기했다. 영상을 시청하며 자주 소리 내어 웃었다. 문득 재작년인가 Mnet에 실시한 걸 그룹 오디션에서 탈락한 후 눈물을 펑펑 흘리던 소녀들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지금도 저 소녀들처럼 스타가 되기 위해 숱한 또래의 소녀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청춘을 저당 잡힌 채 하루하루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순전히 자신의 실력으로만 성공하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복권에 당첨되듯 운이 따라줘야 그나마 데뷔라도 이룰 수 있다. 그 전에 엎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고, 중도에 지레 지쳐 포기하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스타들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했을 것인가. 어린 청소년들에게 돈과 인기, 명예는 확실히 매혹적이다. 또래들 앞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 한껏 자신의 존재감을 뽐낼 수 있다는 유혹을 어린 청소년들이 이겨 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일부 어른들은 그 어린 청소년 스타들을 상품으로 취급하여 이윤을 뽑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으니, 가끔 꿈을 이루지 못해서 혹은 꿈을 이뤘으나 외로움과 성취 뒤의 헛헛함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는 아이돌이 나오는 것은 필연일 것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창백한 표정 뒤에 감춰진 그들의 황폐한 영혼을 생각하면 너무도 안쓰럽다.
내가 아는 후배 하나도 얼마 전 그 세계 속으로 요란하게 들어갔다. 김광석 노래를 무척이나 감동적으로 부르는 무명 가수였는데, 그는 작년에 치러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수상한 후 대중 스타의 반열에 당당하게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집회를 하거나 축제를 진행할 때면 그는 불원천리 달려와서 말도 안 되는 출연료로 공연을 해주던 후배였다. 늘 선한 미소를 머금고 “형님!” 부르며 다가오던 후배. 하지만 이제 그를 만나려면 매니저와 일정 조율을 마쳐야만 한다. 억대의 우승 상금을 받았고, 출연료도 수십 배로 훌쩍 뛰었다. 이제 민예총이나 평화축제 조직위에서 그의 얼굴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는 “가고는 싶으나 일정이 맞질 않네요. 죄송합니다.”라며 미안한 마음을 전하겠지만, 이미 그는 유명해지기 이전의 그가 아님은 명백하다. 그걸 탓할 수는 없다. 아니 탓해서는 안 된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그가 늘 꿈꿔온 길일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돈은 없어도 예술 하나에 모든 걸 바치며 치열하고도 신명 나게 활동해온, 전국의 예술가들과 자유롭게 어울리던 시절의 순박함과 분방함은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각각의 세계에는 그 안에서만 관철되는 나름의 법칙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어떤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가에 따라 그는 앞으로도 우리와 가깝게 지내거나 한참 더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우리는) 그를 잃고 싶지는 않지만, 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존중한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가 흘린 땀방울을 알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전화를 꺼 놓았다. 뜬금없는 일거리나 술 마시자는 제안으로부터 나의 오후를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오늘 오후에 구월동 상가 번영회에서 가을 축제를 연다는 말을 갈매기 형으로부터 얼핏 들은 것 같은데.... 하지만 설사 축제가 벌어졌다 해도 나는 오늘 오후에는 외출하지 않았을 거다. 밤늦어 휴대폰을 켰더니 엊그제 만난 친구와 두 명의 후배로부터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수신된 카톡 문자도 수십 개였지만 대개는 산행하며 찍은 친구의 사진이거나 쇼핑을 권유하는 의례적인 문자들이었다. 전화한 친구와 후배에게는 내일 아침 문자를 보낼 생각이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았는데도 하루가 짧다고 느껴졌다. 아니 나가지 않았기에 짧다고 느낀 건가? 아무튼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을 만끽했다.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웠고, 점심에는 칼국수, 저녁에는 냉면으로 끼니를 대신했다. 탄수화물 섭취를 줄여야 할 텐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