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지 (8-17-Wed, 맑음)
일단 교육청과 재계약을 하게 되었다. 다시 청에서 다시 일하게 된 것이다. 지난 2년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었다. 일도 익숙하지 않았고, 업무 분담도 (들어올 때 생각했던 것처럼)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어떤 일은 내 영역이 아닌데도 처리해야 했고, 또 어떤 일은 내가 해야 할 일인데 깜빡하고 넘어간 것도 있다. 청의 일이란 원래 그런 경우가 부지기수라서 그것이 특별히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가끔 휴일에조차 밀려드는 일 때문에 피곤함을 느낀 적은 여러 번이다. 정확하게 "이건 내 일이 아니잖아요?"라고 선을 그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업무 분장상 해당 업무에 책임이 있는 직원보다 내가 그 일을 더욱 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일을) 요청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딱 잘라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나 또한 업무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획하지 않은 탓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내가 근무하는 2년 사이에 대통령이 바뀌었고, 교육감도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의 교육감은 자신의 교육 이념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고, 정책을 펼치는 데 있어서도 훨씬 힘을 실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 나는 교육감이 시민과 학생에게 던진 약속들을 훌륭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성심껏 도울 생각이다. 그것이 보좌관의 역할이고, 시민의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공직자의 사명일 테니 말이다. 나이 60에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건 축복받은 일이다. 나를 사랑하고 믿어주는 모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점심은 체육건강교육과 정 모 장학사와 함께 먹었다.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한 열혈남이다. 얼마 전 부친 상을 당해 마음이 무척 쓸쓸할 텐데, 선배에게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일부러 3층까지 올라온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주변을 잘 챙기고 모두에게 따뜻한 그가 더는 맘고생하지 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세상에는 찐사랑꾼들이 너무도 많다. 그 허다한 사랑꾼들로 인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졌을 것이다. 통념을 과감히 내팽개친 그와 같은 용기가 나에게는 없다. 나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동경할 뿐 행위로써 사랑은 하지 못하고 있다. 재는 게 많고, 두려움도 많아서다. 상대에게 부담 주기 싫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견뎌야 하는 서로 간의 어색함이 싫기 때문이다. 상처 없이 깨끗한 사랑만을 원하면 사랑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사랑은 다소 무모해야 한다. 사랑은 가끔 겁이 없어야 한다. 물론 나에게도 '사랑밖에 난 몰라'의 시절이 없진 않았다. 사랑의 신열에 들떠 세상의 모든 사물에게조차 눈인사를 보내던 시절, 그때는 나도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다. 용기도 있었고 자신감도 있었다. 태산 만한 욕망을 한 줌 사랑과 미련 없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문득, 그때가 그립다.